강론자료
2024-09-01.....연중 제22주일 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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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 (나해) 신명기 4,1-2.6-8 야고보서 1,17-18.21ㄴ-22.27 마르코 7,1-8.14-15.21-23 2024. 9. 1. 토요저녁(18시) 미사 주제 : 내가 사는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기 아직도 덥습니다만, 사람들의 말에 더위는 한풀이 꺾인 듯합니다. 말로는 여전히 덥다는 소리를 하지만, 그것도 자연의 조화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자연을 대하면서 우리가 할 행동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의 힘으로 할 일이 있다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협력하는 일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 방법을 무엇으로 생각하겠습니까? 10년쯤 되었습니다만, 프란체스코 교황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라는 이름의 회칙을 발표(=2015년)하시면서, 지구의 환경이 사람의 협력과 협조로 더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물론 교황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좋아지려면 사람이 협조하는 일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 22주일입니다. 내가 삶에서 몇 마디의 말을 기억한다고 해서 내가 사는 세상이 화들짝하게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일에 바쁜 사람들은 현실에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직접 밝히시는지 알 수도 없다고 말하고, 교회가 하느님의 뜻을 말하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인정하거나 그 말씀대로 따르려고 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독서로 들은, 신명기의 말씀은 구약시대에 선포된 것이라고 시간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말씀을 들으면서 현실에도 적용되는 표현이라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세상의 모습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질러오면서 히브리민족은 가나안땅을 점령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실제로 그 일을 이루기 전에 들은 말씀이 오늘 모세를 통하여 들은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하느님의 명령은 우리가 무엇이라 기억하겠습니까? 계명으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뜻을 우리가 잘 지키기만 한다면, 히브리민족에게 현실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무엇을 얻는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내가 하는 대답에 부정적인 태도가 들어있다면, 우리는 실제로 행동을 하기 이전에 하느님의 뜻을 사람의 생각보다 못한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에 관하여 우리가 이렇게 말하지만, 복음으로 들은 말씀을 함께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삶의 자세와 태도를 바꾸는 일이 쉽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모래바람의 사막기후에서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잘 씻는 일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건강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선포하신 일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지켜야 할 형식만을 강조하고 본래의 뜻은 어디론가 사라진 희한한 규정이 됩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도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요구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모래바람으로 사람이 더러워진 데서 깨끗하게 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의 내부에서 마음과 생각을 올바로 다스리지 못하여, 더럽게 되는 일을 경계(警戒)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그러했는데, 사람이 그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인정한 것이겠습니까? 사람의 삶을 흉하게 만들고, 그 모습을 잘못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마음과 생각을 올바르게 건사하지 않을 때 생기는 일입니다. 그 중요한 사실을 모른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문제는 안다고 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은총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처럼 겉으로 꾸미는 일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우리는 겉으로 꾸미는 일만큼이나 속에서 나오는 삶에도 생각에도 올바른 태도를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지혜를 사용하여 우리는 건물을 짓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든 결과가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내 주변의 형제와 자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결과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80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