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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탄생 -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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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탄생’ - 2022년 작, 감독 ‘박흥식’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신학생 시절, 방학을 앞두고 학기의 마지막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제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신부님들께 “살아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신학생들에게 저 인사말은 사제 성소를 향한 인식의 변화를 불러일으켜 주었습니다. 사실 신학생에게 방학이란 “살아 돌아오겠습니다.”는 다짐보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가 더 어울려 보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향한 기억은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저에게 ‘순교’라는 단어를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게 해줍니다. 저 자신이 순교자들의 피로 세워진 교회에 합당한 사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면 ‘살아남았다.’라는 안도로 가득한 일상을 다시금 ‘살아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채우기 위해 마음을 다잡기 때문입니다.
박흥식 감독이 연출한 영화 〈탄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삶을 다룹니다. 영화는 신학생으로 발탁된 뒤 마카오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청년 김대건이 신부가 되어가는 과정과 순교의 영광을 입게 되는 순간까지를 철저한 고증을 통해 그려나갑니다. 그 안에서 박해로 점철되는 조선 천주교회의 실정과 아편전쟁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시아 정세를 마주한 청년 김대건의 사제직을 향한 열망과 교회와 세상을 향한 애정은 더욱 뜨거워집니다. 그 뜨거워진 마음이 조선인 최초의 사제를 탄생시켰고, 수많은 박해를 겪은 조선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세속의 기준으로만 바라보면 ‘허무’ 그 자체일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마카오로 유학을 가 10년의 세월 동안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조선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은 청년 김대건은, 사제가 된 지 13개월 만에 스물여섯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부님의 삶을 결코 허무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는 허무하게 끝나버렸을지 모를 김대건 신부님의 사제로서의 삶은, 이후 한국 천주교회를 넘어 세계 보편교회에 커다란 이정표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탄생〉이 보여주는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같은 다짐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같은 신부님의 삶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순교’란 결국 세상의 허무를 극복해 나가는 삶의 태도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성실히 살아가며 묵묵히 걸어 나가는 삶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신앙의 기준으로 살아가기 퍽퍽한 현실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손이자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부활의 영광으로 승화시킨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밀려오는 허무의 순간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허무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남았다.”라는 안도의 한숨 대신에 “살아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뜨거운 다짐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24년 9월 22일(나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서울주보 6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국내수학)] 0 45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