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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어떤, 교회: 이별이 작별이 되는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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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회] 이별이 작별이 되는 교회
어느새 11월입니다. 2024년이라는 시간도 이제 한 달 남았죠. 이 해의 마지막을 앞둔 계절에 교회는 위령 성월을 보냅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또 우리도 언젠가 맞이할 마지막 떠남을 생각하는 달이죠. 누군가를 떠나는 일을 헤어짐이라 한다면, 교회는 이 헤어짐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말합니다. 지상을 순례하는 교회와 천상 교회, 그리고 정화를 위한 연옥 교회와의 만남과 소통이 위령 성월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을 이별(離別)이라 하고, 제 힘으로 힘껏 갈라서는 헤어짐을 작별(作別)이라 한다. 이별은 ‘겪는’ 것이고 작별은 ‘하는’ 것이다.” (이병률, 『바람의 사생활』)
오랜 시간 교회와 차가운 담을 쌓고 있던 분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보통 소중하고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 후에 심경의 변화를 겪고 교회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분들의 변화에는 고인(故人)과 함께 신앙생활했던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한몫을 합니다. 본당에서 누군가 돌아가시면 위령회 회원 분들이 유가족 분들을 만나 장례 준비부터 장지(葬地)에 고인이 묻힐 때까지 크고 작은 일들을 도와줍니다. 죽음이란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함 앞에서 힘을 보태어 고인을 잘 떠나보낼 수 있게 정성을 다하는 위령회 회원 분들 덕분에 마음이 먹먹해지죠. 더불어 고인과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하며 본당에서 많은 교우들이 빈소에 와 연도(練禱)를 바칩니다. 남겨진 가족들이 고인과 잘 헤어질 수 있게, 그리고 지상의 순례를 마친 고인이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며 구슬픈 노랫가락에 마음을 담습니다.
“기도가 통하는 세상이면 그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니겠지. 정말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그럼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은 간절히 살기를 바란 게 아니란 말이야?”
거기까지 말하고 주희는 가만히 숨을 쉬었다. 윤희의 대답을 바라는 것처럼. 윤희는 팔에 얼굴을 받치고 누워 있는 주희를 아무말 없이 바라봤다.
“그런데도, 가끔은 사람들이 우리 엄마 죽지 말라고 빌어준 거. 그 기도들은 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 기도들은 기도 나름대로 계속 자기 길을 가는거지. 세상을 벗어나서. 그게 어디든 그냥 자기들끼리 가는 거지. 그것도 아니라면…”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지상을 순례하는 우리는 교회에 모여 이 길이 나 혼자만 걷는 외로운 길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믿음이란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처지와 아픔을 헤아리고 기쁨과 희망을 함께 나누면서 핏줄로 연결된 가족보다 어쩌면 더 끈끈한 마음으로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의 소중함을 간직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죠. 고마움과 미안함을 아는 사람, 나의 안녕과 행복이 누군가로부터 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 타인의 고통에 섬세히 반응하는 사람, 깊이 고민하며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자기의 길을 갈 것이고 그 기도가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를 연결해 준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함을 알기에, 그만큼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죠. 위령 성월인 11월, 우리의 곁을 함께했지만 지금은 여기에 없는 분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어쩔 수 없는 이별 앞에 무너져 있는 분들의 슬픔에 함께 머물러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11월은 쓸쓸함이 아니라 포근함으로 다가오겠지요.
[월간 빛, 2024년 11월호, 박태훈 마르티노 신부(성김대건성당 보좌)] 0 4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