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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심리: 갓생을 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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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심리 칼럼] ‘갓생’을 살다
‘갓생’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인터넷에 찾아보면, 갓생은 신을 뜻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이 합쳐진 신조어로, 하루하루를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생산적인 삶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를 관통하는, 성취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론을 대표하는 단어라는 거죠. 물론, ‘계획적인 삶에서 계획만 남은 삶’이라거나 ‘신 같은 삶을 살려다 (과로사해) 신과 마주할 삶’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있지만, 자기 계발이나 재테크, 주기적인 운동 등 갓생을 살기 위한 라이프 스타일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얼마 전에 한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갓생이라는 말이 말 그대로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이미 갓생을 살고 있는 거 아닐까요? ‘이미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그걸 누릴 줄은 모르고 다른 조건들에만 매달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참 훌륭하다 싶었습니다. 딱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과 함께 사는 ‘갓생’을 살고 있죠. 내가 하느님을 잊어버리거나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을 때라도, 그 삶은 여전히 갓생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잊으시지도, 버리시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더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신학교에서 부제반 수업을 할 때 ‘존재감’ 이야기가 나와서 물었습니다. “존재감은 어디에서 나오죠?” 대답이 없길래, 힌트를 줬죠. “질문 자체에 답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존재감은 존재에서 우러납니다. 능력이나 소유한 것과 상관없이 존재 자체에서 드러나는 것이 존재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존재감을 나의 존재가 아닌 다른 외적인 것에서 찾으려고 하죠. 능력을 더 키워야, 가진 것을 더 늘려야 나의 존재감이 드러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가 되면, 존재감이 없어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갓생을 살고 있는 나,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의 존재에서 우러나오는 존재감보다 더 큰 존재감이 있을까요?
꽃은 자기 아름다움을 뽐내려고 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세상에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살아갈 뿐입니다. 그렇게 자기 모습대로 자기 존재를 피워낼 때, 그 모습을 보는 다른 이가 아름답다고 알아주는 것이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수행해야 하는 거창한 사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하느님과 함께 있음을 알아차리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갓생을 살면서 더 활짝 피어나는 사명! 그 사명을 우리는 이미 수행하고 있습니다.
새해 첫 달입니다. 올 한 해, 우리 각자의 갓생을 어떻게 누리시겠습니까?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마태 6,28-29)
[2025년 1월 19일(다해) 연중 제2주일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0 30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