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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인간4-5: 기술은 인간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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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인간 4] 기술은 인간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가 (1)
2011년 신학교에서 석사 논문을 써야 하는 시기가 되었을 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으로 대표되는 SNS의 급성장을 바라보며 소셜 미디어를 제 논문의 주제로 정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기존의 매스미디어와 다른 소셜 미디어의 특성에 주목하며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각 분야별로 이 새로운 미디어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제 관심을 끌었던 것 중 하나는, 정확히는 소셜 미디어의 등장보다는 인터넷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와 관련된 것으로 인터넷으로 인해 사람들의 뇌 구조가 변화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을 읽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탐구하여 새로운 정보를 얻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던 시대에서,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쉽게 검색하여 찾을 수 있고 잊어버리더라도 다시 찾으면 되는 시대로 변화하며 인간의 뇌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실제 우리의 뇌 구조가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해력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고 글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요즘의 현실을 생각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주장이라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SNS가 가진 특성 탓에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란 점이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인간관계는 현실 세계의 인간관계와 달리 관심사에 따라 아주 쉽게 만들어지며 언제든 끊을 수 있는 매우 느슨한 형태라는 특성을 가집니다. 더구나 알고리즘은 나와 비슷한 성향과 관심사를 가진 이들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그 결과, 학교나 회사와 같은 공간이 형성한 인간관계로 인해 갈등 속에서도 함께해야 했던 관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만 소통하는 관계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유튜브 알고리즘이라 생각합니다. 특정 주제의 영상을 하나만 시청해도 이와 관련된 영상들이 내 유튜브 메인 화면에 주르륵 뜨는 것을 아마 모두들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제가 논문을 발표하던 2014년까지도 SNS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던 사람들이 많아 별로 주목한 사람들이 없던 연구였지만 2020년대 이후로 그리고 특히 최근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양극화는 너무나도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대략 10여 년 전,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고 SNS라는 건 젊은 사람들, 그리고 특히 자기를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열심히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분들이라면 소셜미디어가 인간의 뇌 구조를 바꾸고, 우리 사회를 바꿀 것이란 주장들이 지나친 걱정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분명히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늘 인간을, 그리고 변화된 인간들이 모인 사회를 아주 크게 변화시키곤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셰리 터클의 <외로워지는 사람들>과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2025년 3월 23일(다해) 사순 제3주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
[인공지능과 인간 5] 기술은 인간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가 (2)
지난주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인해 오늘날 인간과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아직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저는 인공지능 기술이 현재 우리가 마주한 변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봅니다.
현대인은 인간의 주요한 지적 능력의 하나인 암기 능력이 점점 퇴화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신체는 일정 기간 특정 부분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되는 특성을 보입니다. 병원에 오래 누워있던 환자의 근육이 빠지는 현상이 그 예입니다. 뇌의 능력도 비슷합니다. 얼마든지 쉽게 모르는 것을 검색하여 확인할 수 있고, 우리의 기억력을 대체할 수단이 많아지며 점점 기억할 일이 줄어들면서 암기 능력이 점점 약해집니다. 여기에 더하여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의 탐구 능력도 점점 퇴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래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데 있어 내가 직접 관련 내용을 검색하고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하지만, 앞으로는 간단히 인공지능에게 묻고 그가 답해 준 것을 그대로 신뢰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아질 것입니다. 지금은 인공지능의 답변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 검증하는 작업에 전문가들이 동원되지만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하면 검증과 식별의 영역에서도 인간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더더욱 검증과 식별이 필요 없어질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것을 기억하지도, 새로운 것을 탐구하지도, 주어진 답변을 검증하지도 않는 인간은 점점 더 인공지능에만 의존하여 지적 능력이 퇴화될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사회적 관계의 변화 가운데 하나는 느슨하고 넓은 관계들이 증가하였고, 이로 인해 사회의 양극화와 거기서 오는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와 이제 개인비서의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은 점점 더 내 취향에 맞춰 모든 것을 나에게 전달해 줍니다. 새로운 기술 발전이 만들어낼 산업의 변화들은 적어도 생산성의 측면에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면대면 접촉을 급격히 감소시킬 것입니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 거기에서만 주로 소통하며 점점 양극단으로 사람들이 나뉘어지는 오늘날의 변화 양상은 이제 인공지능과만 소통하며 각자 파편화되어 고립되는 시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미래의 인공지능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의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든 것들을 학습하여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학습자료들 중 인간이 만든 원본 자료의 비율이 줄어들고 인공지능이 만든 자료가 많을수록 그 결과물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적어도 어느 단계까지는 인간이 만든 원본 자료의 중요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우리 사회의 주요 가치를 무엇이라 규정하는가에 따라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이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지금처럼 기술 지배 패러다임 속에 모든 것을 효율성과 생산성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인공지능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그렇게 바라볼 것입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하며 인간을 공동의 집 지구 속 한 존재로 바라보며 모든 것을 돌볼 책임을 지닌 존엄한 존재로 바라본다면 인공지능 역시 자신을 하나의 관계망 속의 구성원으로 규정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돌볼 책임성을 지닌 존재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2025년 3월 30일(다해) 사순 제4주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 0 7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