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3일 (목)
(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강론자료

2025-03-30.....사순 제4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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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5-03-29 ㅣ No.2539

                                                           사순 제4주일 (다해)

여호수아 5,9.10-12      2코린 5,17-21      루카 15,1-3.11-32

2025. 3. 30.

주제 : 하느님의 축복을 얻는다는 일

사람은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삽니다. 누구나 실패보다는 성공이 좋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몸의 행동이 따르지는 않더라도 삶에 좋은 결과가 생기기를 바라면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사람이 드러내는 행동에 관한 판단일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결과를 생각하고 그대로 산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자기의 생각이 옳은 길을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의 앞에 닥친 세상을 한꺼번에 파악하지는 못하기에, 개인의 삶에 이익이 생긴다고 여긴다면 자기 자신은 옳게 사는 사람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이익이 생기는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들은 탕자에 관한 비유는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을 우선으로 생각한 본보기가 탕자가 드러낸 삶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잘못된 길로 갈 때는 자기의 삶을 바르게 대하지 못합니다. 현실에서 나는 올바른 길로 간다고 주장했는데, 나에게 돌아온 삶의 결과에 서글픔을 느끼거나 그 삶의 결과를 내 뼈를 시리게 만든다고 느낄 때, 그때서야 사람은 자기가 처한 현실을 예전보다는 정확하게 보기 시작합니다. 방탕하게 살면서 돈을 낭비하고 결국에는 자기의 품에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정한 탕자처럼 말입니다.

 

내가 탕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 소리를 들리는 그대로 반길 사람은 없겠지만, 삶은 다른 사람이 나를 향해서 하는 말이나 판단보다는 내가 느끼는 현실의 모습이 더 중요합니다.

 

방탕한 사람으로 살다가 자기에게 먹을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의 집을 향해서 돌아선 작은아들은 올바른 행동을 한 사람일까요? 예수님은 작은아들이 보인 모습에 관하여 옳다거나 그르다고 판단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탕자로 산 작은아들이 잘못 살았다고 꾸짖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동생을 꾸짖고 질투한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충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한 형님이었습니다. 자기는 아버지에게서 받아야 할 것을 다 받지도 못했는데, 동생은 아버지에게서 받을 것을 다 챙겨서 탕진했고, 이제는 자기 몫으로 생각할 아버지의 남은 재산에서 자기에게 돌아올 몫을 또 빼앗으러 온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죽었다가 돌아온 아들이라는 표현으로 동생의 삶을 받아들이셨지만, 우리는 현실의 삶에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이러한 판단이 옳다고 말하며 살까요? 정의와 사랑의 뜻이 무엇인지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도 아버지가 보이신 삶의 모습처럼 살기는 생각보다도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정의를 말하면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에 비교하여 하느님의 사랑은 정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다른 차원을 보이십니다.

 

세상의 삶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사랑과 정의이겠지만, 둘 중에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까? 내가 잘못한 것을 예쁘게 포장하는 사랑이어서도 잘못이고, 내가 올바른 길을 가지 않아도 마음을 돌리기만 하면, 나는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오만을 드러내서도 잘못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히브리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가로질렀고, 40년이 지난 다음 자기들이 수고하지 않은 땅에서 난 수확을 얻고 축제를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느님께 감사의 마음을 얼마나 드러냈을까요? 궁금한 일이면서도, 그들의 삶에 비교하여 우리는 어떻게 사는지 돌아봐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입은 사랑으로서 드러내야 할 모습은 화해를 실천하고, 사람들의 사이에 하느님의 화해를 전하는 일입니다. 화해를 드러내고 실천하는 삶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얻어 드러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순시기를 마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부활절을 바르게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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