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ㅣ교회건축

원교구 성당 순례18: 임마누엘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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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4-17 ㅣ No.1189

[수원교구 성당 순례] (18) 임마누엘성당


“잊지 않겠다” 약속 온전히 지켜나가는 교구 가장 작은 성당

 

 

수원교구에서 가장 작은 성당이 있다. 평범한 고등학생 방 한 칸만 한 크기의 성당. 사제의 꿈을 키우던 한 고등학생을 기리며 너도나도 작은 힘을 모아 세운 성당. 봄이 되면 마음 한구석에 떠오르고야 마는 성당. 수원가톨릭대학교(이하 신학교) 교정에 자리한 임마누엘성당이다.

 

 

- 신학교 1학년생 기숙사인 신덕관 주변은 교정 안에서도 4월이면 벚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는 장소다. 그 벚나무들을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한 작은 목조건물이 임마누엘성당이다. 이승훈 기자

 

 

4월 16일, 그날을 기억하는 성당

 

신학교 교정. 신학교 1학년생들의 기숙사인 신덕관 주변은 교정 안에서도 4월이면 벚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는 장소다. 그 벚나무들을 바라보는 언덕에 자리한 작은 목조건물. 건물 현판에는 ‘임마누엘성당’이라는 이름이 가지런히 쓰여 있다.

 

종탑 위에 올라간 십자가, 그리고 종탑에 설치된 종, 스테인드글라스. 내부에는 작은 기도상도 있다. 작기는 하지만 성당다운 면모는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성당이라 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일반적으로 공동체가 모여 하느님을 경배하는 미사나 전례 등을 하는 건물을 성당이라고 부르지만, 임마누엘성당은 그런 공간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작다. 사실 이 성당은 교회가 지은 건물도 아니거니와 성당 부지에 세워진 성당도 아니었다.

 

임마누엘성당이 지어진 것은 예비신학생이었던 박성호(임마누엘) 군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서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성호군을 위해 시민들이 힘을 모아 안산 화랑유원지 내 세월호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앞에 성당을 지었다. 시민모임 ‘세월호가족지원네트워크’가 진행한 이 프로젝트에는 최봉수(베드로) 목수를 필두로, 종교 유무, 전문가 비전문가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자원봉사로 나섰다.

 

기부 받은 목재와 재능기부로 지은 15㎡ 규모의 아담한 성당. 성호군의 본당 주임이었던 인진교(요셉) 신부는 세월호 참사 200일째인 2014년 11월 1일 이 건물을 축복했다. 처음 지어질 당시 이 성당은 성호군의 이름을 따 ‘성호성당’이라고 불렸다. 이후 임마누엘성당은 세월호 합동분향소 앞을 지키며, 세월호 유가족뿐 아니라 분향소를 찾는 이들을 위로하는 상징적인 건물이 됐다.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긴 이 시기, 이곳은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임마누엘성당은 2018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안산 합동분향소를 철거하기로 결정되면서 없어질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 임마누엘성당과 성당 뒷편에 세워진 세월호 십자가. 이승훈 기자

 

 

교회, 잊지 않고, 잇다

 

갈 곳 잃은 임마누엘성당을 받아준 곳이 바로 신학교다. 임마누엘성당이 철거돼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당시 안산대리구와 신학교는 신학교 교정에 임마누엘성당을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신학교는 임마누엘성당이 옮겨질 자리를 마련했고, 안산대리구는 이전 비용을 부담했다. 그렇게 임마누엘성당은 2018년 5월 1일 신학교 교정에 자리잡았다. 성당을 신학교로 이전하면서 명칭도 성호군의 세례명을 따라 임마누엘성당이라고 바꿨다.

 

임마누엘성당 오른편에는 뒤집어진 배와 노란 리본의 형상이 달린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십자가도 임마누엘성당처럼 처음부터 신학교 교정에 있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우리나라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 진실과 정의의 나라로 향해가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2015년 8월 3일 진도 팽목항에 설치됐던 십자가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모은 기금으로 최병수 작가가 제작한 이 십자가도 세월호 인양 이후 팽목항 정비작업이 시작되면서 철거하게 됐고, 2017년 4월 25일 신학교 교정에 옮겨 세웠다.

 

이처럼 신학교가 임마누엘성당과 세월호 십자가를 받아들인 것은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잊지 않고 이어나가기 위해서다. 신학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가 집중된 안산 지역이 수원교구가 관할하는 만큼, 수원교구의 사제로 양성되는 신학생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고통 받는 이들 곁에 함께하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임마누엘성당과 세월호 십자가를 교정에 품었다.

 

 

- 임마누엘성당 내부. 이승훈 기자

 

 

그저 품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신학교는 임마누엘성당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꾸준히 관리해 왔다.

 

임마누엘성당은 건축 당시 기부 받은 자재로 세워지다 보니 오랜 시간을 버틸 만큼 견고한 재료로 지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물과 습기에 약한 목조건물의 특성상 시간이 흐르면서 보수가 필요했다.

 

특히 2024년에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신학교는 임마누엘성당을 지은 최봉수 목수에게 보수공사를 의뢰해 지붕 너와를 물에 강한 적삼목으로 교체하고 건물을 전반적으로 보수했다.

 

성당 안에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여러 전시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참사 희생자들의 얼굴을 모은 모자이크화와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글, 그리고 임마누엘성당이 지어지고 옮겨지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사진도 전시돼 있다. 무엇보다 전면에 스테인드글라스에 기도상이 차려져있어 성당을 찾은 누구나 기도할 수 있도록 아늑하게 꾸며져 있다.

 

최근에도 다녀간 이가 있는지, 기도상에는 편지와 묵주가 놓여있었다. 신학교 교정에 있어 이전처럼 많은 이들이 쉽게 찾기는 어렵게 됐지만, 신학교에 사전에 연락하면 누구나 임마누엘성당에 방문할 수 있다. 2014년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잊지 않겠다’고 한 약속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임마누엘성당은 여전히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우리를 위로해 주는 듯하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5년 4월 13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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