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25: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4-17 ㅣ No.575

[과학과 신앙] (25)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은하 밝은 고요한 밤에는 새벽을 알기 어렵고(星河夜靜難知曉), 바람은 약해 종소리가 밤을 알리지 못하는데(鐘漏風微未報更)⋯ 첫 닭의 꼬끼오 소리 무척이나 듣기 좋구나(喜聽嘐嘐第一聲).’

 

이 글은 조선 전기 대학자이며 문인인 용재 성현 선생의 시 일부다. 그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성종의 명을 받아 1493년에 유자광·신말평과 함께 조선 음악의 교과서라 불리는 「악학궤범」을 편찬했다. 문학과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그는 새벽의 고요함을 깨우는 닭의 울음소리를 시를 통해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그렇다면 왜 닭은 동틀 무렵인 새벽에 우는 걸까?

 

척추 동물의 경우 뇌 중심부에 솔방울을 닮은 호르몬 분비 조직인 송과선(松果腺)이 있다. 여기에서는 멜라토닌 호르몬이 합성·분비되는데 멜라토닌은 낮과 밤의 일주기(日週期)에 따른 생리적·행동적 활동의 일상 리듬을 만드는 생체시계 역할을 한다. 멜라토닌은 빛이 약한 밤에는 분비가 촉진되어 수면을 유도하고, 빛이 강한 낮에는 분비가 억제되어 수면에서 깬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밤에 방의 전등을 끄지 않으면 잠을 자기 힘든 건 이 때문이다.

 

포유류는 눈을 통해 빛을 받아들이지만, 조류는 머리의 피부를 통해서도 직접적으로 빛을 받아들여 송과선을 자극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보다 훨씬 빛에 민감한 생활 주기를 갖는다. 이 때문에 새벽 동틀 무렵 희미한 빛에도 조류는 멜라토닌 분비 감소로 잠에서 일찍 깨어나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지저귄다. 닭 또한 이런 이유로 사람들에게 아침을 알리는 알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현 선생의 귀에는 새벽 첫 닭의 울음소리가 듣기 좋았겠지만, 베드로 성인에게는 그 소리가 가슴 철렁한 천둥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이번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에는 베드로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루카 22,33)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22,34)라고 하시는 장면이 있다. 실제 베드로는 새벽 첫 닭이 울기 전 예수님께서 끌려가실 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22,62)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굴종, 자신에 대한 비굴함에 괴로워하던 베드로 성인의 인간적인 나약함은 첫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변모되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을 때까지 교회의 반석으로서 역할을 다한다. 생명파 시인 청마 유치환은 1953년 그의 수상록 「예루살렘의 닭」에서 ‘위선이 선(善)을 능욕하는 그 부정 앞에 오히려 외면하며 회피하므로서 악에 가담하지 않았는가. 새벽이면 새벽마다 먼 예루살렘 성에 닭은 제 울음을 기일게 홰쳐 울고 (⋯) 사모치는 분함과 죄스럼과 그 자책에 눈물로서 베개 적시우노니’라며 스스로를 반성했다.

 

사순 시기는 깊은 성찰을 통해 세상과 자신에 대한 행동의 변모를 실천해야 할 회심(回心)의 시간이다.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에 세상의 부정과 위선 그리고 자신에 비굴함에 대해서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겠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4월 13일, 전성호 베르나르도(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1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