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25-04-19.....부활성야 다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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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성야(復活聖夜) - 다해 1독서 : 창세기 1,1-2,2 2독서 : 창세기 22,1-18 3독서 : 탈출기 14,15-15,1
2025. 4. 19. (토) 주제 : 부활이란 무엇일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늘은 세상에 사는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전례에서 기억한 시간은 어제 한낮, 오후 3시였는데, 그때로부터 하루와 몇 시간이 더 지난 다음,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는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부활은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나 생각대로 된 일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서 사람의 삶에 실현된 일이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 드러낼 반응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놀라운 일이 우리의 삶에 일어났다’고 표현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놀라운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부활이라는 사건이 우리의 협조나 협력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신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다시 살아나거나 생명을 되찾았다는 일을 사람이 기쁘게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표현할 일이지만, 사람의 삶에 마지막 순간이라고 할 죽음이라는 시간을 만난 다음, 그 몸에서 떠나갔던 생명이 다시 찾아온 일을 우리는 부활(復活)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들에는 생명이 나를 떠나간 순간이 어떠했는지 그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그 생명이 다시 나를 찾아온 순간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사람이 바라는 삶이란, 태어난 처음부터 아예 죽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도록 사는 일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람이라는 존재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하느님이 처음부터 세우신 계획에는 일치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정확하게 우리의 생각을 정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에 찾아온 죽음은 예수님의 부활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바라는 일은 그의 삶에 큰일을 한다고 해도, 부활이라는 놀라운 일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실현되는 일은 아닙니다. 이 부활이 내가 가진 마음이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정하신 부활의 계획에 관하여 사람은 인정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자기의 발걸음을 돌려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떠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손해는 누구에게 생기겠습니까? 손해는 하느님에게 생기거나 남을까요? 아니면 하느님을 등지고 돌아선 사람에게 남는 결과이겠습니까? 실제로 세상에서 죽었다는 체험을 하기 전이라면, 부활이 무엇인지 우리는 온전하게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있다고 하는 순간은 부활을 체험할 시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은 하느님의 뜻이 적용되는 일이지, 아침의 생각과 저녁의 생각이 달라지는 사람의 삶에 사람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안식일을 지내고 다시 밝은 날, 아침 해가 뜨기 전, 예수님의 무덤이 어디에 있었고, 전날 어떤 모습으로 무덤이 서둘러 정리되었는지 알았던 세 명의 여인은 예수님의 몸에 바르려고, 준비한 향유를 들고 그 무덤이 있던 골고타 산, 해골산으로 갔습니다. 그녀들이 가면서 고민하고 걱정했을, 예수님이 모셔져 있던 무덤은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그들은 전날에 무덤을 막는 돌을 보았으니, 어떤 걱정을 했겠습니까? 하지만 그녀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그녀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의 앞을 막았던 돌은 이미 굴러나 있었습니다. 부활을 체험하는 길의 앞에 사람은 걱정하고 지나친 상상을 많이 하지만, 하느님의 일이 실현되는 곳에는 사람이 하는 걱정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무덤을 찾아온 그녀들을 더 놀라게 하는 것은 무덤에서 만난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나타난 두 젊은이는 여인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이들의 가운데서 찾느냐는 타박’을 듣습니다. 그렇게 젊은이들이 타박한 소리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리였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부활이라는 표현을 들으면서 내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다가 그 사람이 다시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만, 여인들에게 나타난 두 사람의 선언은 달랐습니다. 우리는 그런 선언을 들으면 부활이라고 받아들일까요? 세상의 창조부터 마른 땅에 뼈만 남았던 것들에게 다시 하느님의 숨이 찾아온 일의 내용까지 독서로 들은 우리는 부활을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하느님의 생명이 다시 우리를 찾아온 날, 그 일을 기쁨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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