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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평신도, 살아계신 하느님의 표지가 되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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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반장 월례연수] 평신도, 살아계신 하느님의 표지가 되도록
삼위일체 하느님에 의해 세워져 인간 역사 안에서 살아가는 교회의 모습을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백성은 하느님을 거룩하게 섬기면서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도록 부르심 받았으며, 하느님께서 이루실 종말론적 충만한 완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 안에 성품성사를 통해 봉사자들을 세우셨는데, 곧 교계제도에 속한 성직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자유롭고 질서 있게 그 사명을 수행하면서 이 여정을 갈 수 있도록 봉사합니다.
한편 하느님의 백성 대다수는 평신도입니다. 보통 평신도를 ‘성직자도 아니고 수도자도 아닌 사람들’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를 정의할 때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선언합니다.
“[평신도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백성 전체의 사명 가운데에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christifideles)을 말한다.”(「교회헌장」 31항)
사실 우리가 누군가의 정체성을 규정할 때 “~도 아니고, ~도 아닌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매우 소극적인 방식이고, 또 그 사람의 본질을 보여주기보다는 무언가 ‘나머지 사람들’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평신도를 이런 방식이 아니라, 평신도가 가진 고유의 품위에 초점을 맞춰 위와 같이 정의한 것입니다.
평신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로서, 이를 좀 더 설명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며, 또한 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성직자 · 수도자 · 평신도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그리스도의 삼중직무에 참여하는데, 그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성품성사를 받은 이들은 성사를 거행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신자들을 돌보는 방식으로 이 직무들을 수행합니다.
한편, 평신도가 이 직무를 수행하는 고유한 특성을 ‘세속적 성격’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세속적’이라는 말은 ‘속되다’라는 뜻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속한’, ‘창조와 종말 사이의 시간과 공간에 속한’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 세상 안에서, 곧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말과 삶으로 증언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교회의 활동 방식도 이런 특성을 갖고, 사제와 수도자도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교회 안에서 고유한 소명과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와 달리 평신도들은 교회에 속한 사람들인 동시에 온전히 세상에 속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즉 교회의 충만한 구성원인 동시에 세상 안에서 세상일을 주로 하며 살아갑니다. 평신도의 이러한 삶의 가치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평신도들이 살고 활동하는 ‘세속’ 혹은 ‘세상’에 대해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이해하는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의회는 인간의 세계를, 곧 인류 가족 전체와 인간이 살아가는 온갖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무대인 이 세계에는 인간의 노력과 실패와 승리가 새겨져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계가 창조주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보존된다고 믿는다. 죄의 노예 상태에 떨어졌으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악의 권세를 쳐부수시고 해방시키신 이 세계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변혁되고 마침내 완성될 것이다.”(「사목헌장」 2항)
세상이란 ‘인류 가족과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 전체’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곳입니다. 물론 교회는 이 세상이 죄에 떨어졌음도 인정합니다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날 완성하시리라는 것도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창조주이자 동시에 구세주이시며, 인간 역사를 이끄시는 주인공이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하느님의 이런 활동을 가리키는 표징이 있는데, 사랑의 행위들, 정의로운 행위, 인간 의식의 건전한 발전, 등이 그 예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을 반대하거나 손상시키는 악한 행위들도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평신도들의 임무는 자기 소명에 따라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세속 안에서, 곧 각각의 온갖 세상 직무와 일 가운데에서, 마치 그들의 삶이 짜여지는 것 같은 일상의 가정생활과 사회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서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아, 자기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교회헌장」 31항)
평신도는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 협력하기도, 악에 대항하기도 하며, 세상 안에서 말과 삶을 통해 복음의 빛을 증언합니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최전방’에서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이들, ‘세상 안에 교회가 현존하게 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들이 세상 안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표지’, ‘세상 안에서 영혼’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평신도는 저마다 세속에서 주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 모든 이가 다 함께 또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영신적 열매를 맺어(갈라 5,22 참조) 세상을 길러 주어야 하고, 주님께서 복음에서 행복하다고 선언하신 가난한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마태 5,3-9 참조) 생명력을 얻는 바로 그 정신을 세상에 전파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영혼이 육신 안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안에서 그 혼이 되어야 한다.””(「교회헌장」 38항)
주님께서는 부유하셨지만 가난하게 되시어 사람들 가운데 사시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찢긴 마음을 싸매주며’ 잃어버린 이들을 찾아 구원하셨던 것처럼, 평신도들도 세상 안에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발견하면서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평신도가 한마디로 ‘영혼이 육신 안에 있는 것처럼 세상 안에서 영혼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5년 5월호, 최현순 데레사 교수(서강대학교)] 0 7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