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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7) 길을 나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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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7) 길을 나서다...
지난 5월 30일 제가 있는 가톨릭목포성지에서는 ‘성모님과 함께 길을 나서다’라는 주제로 성모의 밤을 거행했습니다. 정기 희년 ‘희망의 순례자’라는 주제에 맞게 신자들이 성모님의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묵상하며 성모님을 맞아드리고 함께 그 여정을 순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모의 밤을 준비했습니다.
시작은 평생 순례자로서 살아가신 성모님이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천사의 말을 듣고 그 엄청난 일에 순종하시며 길을 떠나십니다(루카 1,39). 인간의 구원을 위한 구세주의 탄생을 위해서도 먼 길을 나서십니다(루카 2,4). 또한 예수님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님의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마지막의 십자가까지 동행하시며 순례하십니다. 그렇게 성모님께서는 순례자로서 살아가십니다. 그런 그분이 오늘도 우리를 위해 길을 나서십니다. 우리의 아픔과 슬픔에 함께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려고 우리의 삶에 찾아오십니다.
그런 성모님과 함께 길을 나서는 행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의 달인 5월 한 달 동안 ‘길을 나서는 성모상’을 모시고, 목포에서 가장 먼 흑산도에서 시작하여 여러 섬을 돌아 목포 시내 본당을 거쳐 마지막은 성지의 바실리카까지 순례하였습니다. 5월 성모의 밤 수많은 촛불과 장미꽃이 성지 광장을 수놓았고, 묵주기도의 장미꽃다발이 성모님의 주변을 수놓았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석 달 동안 행사를 준비하면서 걱정도 많았고 짜증도 부렸지만 그 모든 것들이 녹아내렸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으니 갑자기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진 것에서 떠나고 싶었고, 익숙한 곳에서 떠나고 싶었고, 하던 일에서 떠나고 싶었고, 그렇게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똑같은 일상, 쫓기듯 살아왔던 삶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고, 조금은 한가롭게 길을 걷고 싶어졌습니다. 성모님과 함께 길을 나서서 떠나자고, 성모님의 순례에 함께하자고 다른 이들에게는 말했지만 정작 저는 떠나지 못하고, 길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 집착했고, 가진 것을 내려놓지 못했고, 그냥 맡겨두지 못했습니다. 떠나야 합니다. 희년을 선포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순례를 위해 떠나라고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모든 희년 행사의 근본 요소는 순례입니다. 전통적으로, 순례 여정을 나서는 것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보 순례는 침묵, 노력, 단순한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에 큰 보탬이 됩니다. 다가오는 희년에 희망의 순례자들은 틀림없이, 희년을 충만하게 살아내고자 옛 순례길과 오늘날의 순례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로마 자체에서도 전통적인 카타콤바와 일곱 교회 방문과 더불어 또 다른 순례 여정이 제안될 것입니다. 국경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우리는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가고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건너가서 피조물과 예술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서로 다른 체험과 문화의 풍부함을 보물로 여기는 법을 배웁니다. 또한 기도 안에서 그 아름다움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에 감사하게 됩니다. 순례길과 로마 시내에 있는 희년 성당들은 믿음의 순례길에서 쉼터이자 영성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곳에서 모든 참된 회심의 여정의 본질적 출발점인 화해의 성사에 다가가, 희망의 샘에서 길어 올린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개별 교회에서는 사제와 신자들의 고해성사 거행을 준비하며 개별적 고백의 형태로 기쁘게 고해성사를 할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 5항>
떠나야만 하는 이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느님께로부터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라는 명령을 받고 즉시 이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런 무모한 모험은 하느님께서 어디든 계시며, 그 하느님께서 언제나 자기를 보호해 주실 거라는 확신이 없다면 감행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신앙인은 하느님 때문에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들이며 믿기 위해서,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스스로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것들은 너무 많습니다. 자기를 묶어 놓은 가족의 울타리에서, 생활 습관이나 행동 방식 그리고 모든 소유와 집착에서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더욱 떠나지 못하는 인간으로 변해가는지도 모릅니다. 텔레비전에 묶이고, 핸드폰에 묶이고, 부동산, 주식에 묶이고, 소유에 묶이고, 인기와 성공, 명예와 권력에 묶입니다. 떠나지 못할수록 자유를 잃어가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확신은 사라집니다. 내가 집착하고 있는, 내가 묶여있는 그것들을 더 믿고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받으셨던 ‘악마의 유혹’은 예수님의 떠남을, 그리고 인간으로서 떠나지 못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에 대해서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루카 4,1-13)
성령께서 예수님을 인도한 곳은 다름 아닌 외롭고 쓸쓸하고 배고픈, 극한의 상황이 펼쳐진 광야입니다. 하지만 그 광야는 인간이 내는 모든 소리와 화려한 빛이 차단된 절대 고독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자신 안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하느님의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그렇게 우리도 광야로 떠나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세상의 것들에 묶여 자신 안에 매몰된 우리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시며 우리를 광야로 떠나보내십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여전히 악마에게서 유혹을 받겠지만 그 떠남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언제나 함께 계심을 확신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어둡고 거칠고 막막한 광야를 헤쳐 나가다 보면 자신이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자신의 삶이 무한한 은총으로 채워져 있음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무모한 모험일 수 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힘든 여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확실한 믿음을 위하여,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희망 안에서 끊임없이 나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그 무모하고 쓸데없을 것 같은 순례를 오늘도 떠나야 합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7월호, 최종훈 토마스 신부(가톨릭목포성지 담당)] 0 11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