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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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로마군단 레지오 근원 도시, 스페인 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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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8-06 ㅣ No.2411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로마군단 레지오 근원 도시, 스페인 레온

 

 

 

- 레온 대성당

 

 

엘브르고 라네르 마을의 신라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외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길도 있어서 정보에 밝은 일행을 따라 라면을 판매하는 바가 있는 마을로 가려고 한다. 까미노 길도 가끔은 이렇게 변화를 주어 활력을 얻을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 외길로 이어지는 길은 아주 길었다. 일행은 오늘따라 유난히 빠른 속도로 걸었다. 5명 중 네 번째로 걸었는데 자꾸 거리가 멀어졌다.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아서 기를 쓰고 걸었다. 남자들보다 보폭이 좁은 내 걸음으로는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자꾸만 따라붙으며 걸었다. 

 

- 엘부르고 라네르 마을의 신라면

 

 

순례길에서의 생활은 단조롭다. 먹고 자고 걷고 자는 게 전부이다. 그래서 그런지 먹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약간은 집착하게 된다. 작은 것도 크게 생각돼 기쁨도 배가 된다. 순례길을 걸으며 얼큰한 라면 맛이 그리웠나 보다. 한국에서는 별로 안 먹는 라면 먹을 생각에 자꾸 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도 따라가지 못할 때는 뛰어서 거리를 좁혔다. 거리가 벌어질 때마다 남편은 뒤에서 걸음을 맞추어 주었다. 

 

드디어 엘부르고 라네르 마을이 보이고 신라면 파는 바가 보였다. 당시 간판에 신라면 3.5유로, 햇반 4.0유로라고 한국말로 적혀 있다. 외국에 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한글로 쓴 글씨만 봐도 반가웠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라면을 판다는 정보에 우리가 그것을 찾아 줄기차게 열심히 달려오지 않았던가? 얼마나 발걸음 가볍게 걸어왔는지 신기하다. 따끈한 라면을 기대했으나 오목한 접시에 담긴 라면이 나왔다. 납작한 접시라 국물은 별로 없는 하나의 훌륭한 요리 같았다. 삶은 달걀을 얹고 버섯을 삶아, 고명으로 올려 보기 좋게 내놓았다. 오랜만에 살짝이라도 라면 국물을 먹으니 살 것 같다. 역시 한국인은 얼큰한 걸 먹어야 하나 보다. 

 

- 레온 베네딕토 공립 알베르게

 

 

맛난 라면을 먹고 마을을 벗어나 도로 옆 플라타너스 사이의 오솔길을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길옆으로 나무가 심겨 있고 그 옆으로 수로가 이어져 있다. 물과 은사시나무를 곁에 두고 걸으니 발걸음도 가볍고 마음이 정화되는 듯하다. 다리를 건너자 빨간 열매가 보여 가까이 가보니 산딸기였다. 순례하는 힘든 여정에 산딸기는 특별히 주는 선물 같아 맛있게 따 먹었다.

 

 

로마군단 레지오에서 유래된 도시 레온

 

메세타 고원의 들판을 지나 큰 개울과 울창한 숲이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푸른 숲을 보니 고원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을 찍는 것도 포기하고 부지런히 걸었다. 파란 골조 다리를 타고 외곽으로 올라가 이베리아반도 북서쪽 레온 도시에 입성했다. Leon은 메세타 샌트랄 고원 북서부 지역에 있으며 베르네스 테스강과 토리오강이 합류한다. 레온은 로마인이 세운 도시라고 한다. 군단을 뜻하는 ‘레지오’라는 단어에서 Leon이 나왔다고 전한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군단 6개가 주둔하였다고 한다. 주둔 이유는 금과 은 등의 광물이 나왔고 이것을 수집해 로마까지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서였다. 

 

스페인 북서부 카스티아 레온지방 레온주로 인구 15만 명으로 관광객들과 순례자들이 들리는 곳이다. 레온에는 특별한 축제가 있는데 6월 21~30일까지 펼쳐지는 산후안과 산 페드로 축제 땐 전시와 황소 달리기를, 밤에는 콘서트와 불꽃놀이를 볼 수 있다. 10월 5~12일까지는 산프로일란 축제로 많은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성지순례 여행인 로메리아가 행해진다.

 

- 레온 대성당 내부 스테인드글라스(좌) 가우디 건축물 보티네스 저택(우)

 

 

레온 대성당과 카사 보티네스 

 

레온 대성당은 부르고스 대성당, 산티아고 대성당과 더불어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스페인 3대 성당중 하나이다. 대성당 이전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세운 것이 바로 레온 대성당이다. 서쪽과 남쪽에 광장을 두르고 있는 대성당은 13세기 초에 지어지기 시작하면서 14세기 초에 준공됐다. 15세기 말에 남쪽 탑이 증축된 대성당은 13세기 고딕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레온 대성당은 라틴십자형 평면을 세우고 그 북측에 거의 정사각형 수도원을 세우고 남쪽에 화려한 첨탑을 세웠다. 흔한 돔도 설치하지 않았고 무덤이 있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레온 대성당의 정면은 좌우 종탑 사이에 박공지붕을 얹은 볼륨과 종탑과 떨어져 공중 부벽으로 연결돼 있다. 

 

레온 대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하다. 1800미터 제곱 공간에 128개의 유리창은 부족한 양이라는 평도 받고 있지만 그 빛은 대성당의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서문으로 해서 13세기에 지어진 고딕양식 대성당으로 들어서면 문의 기둥이 ‘눈의 성모상’으로 장식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산티아고 페레그리노가 있다. 순례자들이 하도 쓰다듬은 탓에 반들반들 닳아 있다. 북쪽 끝에 있는 회랑과 박물관도 가볼 만한 곳들이다. 

 

광장을 굽어보고 있는 카사 보티네스 저택은 가우디의 초기 작품이다. 가우디는 아스트로가에 주교관을 건축하면서 동시에 지었다고 한다. 아파트 겸 사무실 용도의 지하 1층, 지상 5층의 건물이었다. 고딕양식의 첨두아치로 된 창문과 자연색의 석회암 외벽과 천연 슬레이트 지붕으로 미려하게 마감되었다. 눈이 많이 오는 레온 지방의 기후를 고려한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이한 부분은 주 출입구의 독특한 조각 장식과 그 위에 올라간 성 게오르기우스 조각상이다. 이 조각상은 레온의 수호성인 여로의 성모상 대신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레온 출신 조각가 칸토가 조각했다. 직사각형의 화강석 틀 속에 이슬람 양식의 아치문이 박혀있고 아치 좌우로 두 개의 원형 창문이 설치돼 있다. 카사 보티네스는 1969년 스페인 역사 기념물로 지정됐으며, 지금은 카하 에스파냐 은행소유로 1층 전시실만 감상할 수 있다.

 

 

레온 베네딕도 수도원의 저녁기도 

 

숙소 반대 방향 끝에 있는 뷔페 WOK을 가던 길에 산마르코스 광장 공원에서 인상적인 조각 작품을 보았다. 초록 잔디와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우리는 레온에서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칼바잘 알베르게에서 숙박하였다. 이곳은 한국 순례자들을 위해 한글 안내문까지 만들어 놓았고, 수녀님들께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며 사진도 찍어 주었다. 

 

 

- 산마르코스 광장의 조각작품(좌) 레온 베네딕토 수도원 저녁기도(중) 레온 베네딕토 수도원 한글 안내문

 

저녁을 먹고 나서 수녀님들의 안내에 따라 순례자들과 함께하는 저녁기도에 참석하였다. 순례자들을 위해 값진 시간을 만들어 준 수녀님들께 감사했다. 피곤했지만 무척이나 편안하고 행복했다. 기나긴 메세타 고원을 무탈하게 걸을 수 있었고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수 있도록 우리 부부에게 은총과 축복을 주심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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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영 미카엘라는 2002년 세례받고, 2008년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하여 Pr. 단장, Cu. 단장, Co. 부단장으로 활동하였다. 2019년 8월 남편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를 38일간 다녀오고, 2021년 ‘사진으로 보는 우리 부부 산티아고 순례길’, 2024년 ‘열정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출간했다. 현재는 플렛폼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활동 중이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7월호, 신미영 미카엘라(청주교구 용암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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