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31일 (일)
(녹) 연중 제22주일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강론자료

2025-09-01.....연중 제22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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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5-08-26 ㅣ No.2567

                                               연중 제22주일 (다해)

집회서 3,17-18.20.28-29      히브리 12,18-19.22-24ㄱ      루카 14,1.7-14

2025. 8. 31.

주제 : 내가 사는 방법!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나 글자의 뜻을 정확하게 안다는 조건을 앞세우면, 사람은 누구나 부자로 살거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소리는 상대적인 가난하게 산다는 낱말을 알고 그 모습이 싫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세상이 정한 일반적인 낱말의 뜻은 그렇습니다. 그렇게 알면, 우리는 세상에서 부자로 살 수 있고 가난하게 살지 않을 방법을 안다고 할까요? 현실의 모습과 바람의 차이가 가장 큰 것이 사람이 이렇게 드러내는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읽도록 정해진 독서와 복음의 말씀을 먼저 대하면서 우리의 눈에 퍼뜩 뜨인 매일미사의 설명에는 앞서 말씀드린 가난의 의미를 바르게 생각해야 하는 일과 함께 우리가 드러내는 현실의 삶을 죄인으로 산다고 단정합니다. 두 가지의 표현을 합치면, 현실에서 우리는 죄인으로 살고 있기에 그 모습에서 벗어나려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가난에 관해서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으니 죄인으로 살고 있다는 교회의 선언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가난하다는 표현과 죄인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우리는 긍정적인 모습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세상의 사람이 아는 이 낱말의 의미와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차이와 변화에 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돈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세상이 된 다음, 우리가 아는 가난이라는 글자에는 좋은 의미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사람이 가난하게 살게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다려야 하고, 다른 사람의 앞에서 내 어깨는 움추러 들어야 하며, 내가 허리를 숙이거나 상대방의 앞에서 편하지 않은 마음이나 생각을 갖고 삶이 쪼그라들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누구도 이렇게 살면 그가 삶에서 좋은 결과를 만든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가난을 벗어나서 상대적인 표현인 부자로 살아야 하며, 죄인을 벗어나서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 내용을 신앙인의 삶에도 똑같이 적용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정한 낱말의 뜻에는 그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이 표현을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드러내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로 살던 부자의 집에 찾아가서 보신 일을 전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초대하는 자의 가까이에 있을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보고 그렇게 살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만, 예수님의 이 말씀을 누가 좋게 생각하겠습니까?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실제로 자기를 높은 자리에 앉게 할 수 없습니다. 자리에 앉도록 허락하는 일은 잔치를 벌인 사람이고, 나를 자기의 잔치에 초대한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세상의 표현으로는 부자로 산다는 의미이겠지만, 이렇게 사는 일을 부자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대우를 받기가 어려운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신앙을 우선하는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려면,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며 세상에서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부자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먼저 받아들이겠다는 가난한 사람으로 사는 표현이 됩니다. 자기의 모습을 바르게 볼 줄 아는 사람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죄인이라고 표현하는 의미가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내가 스스로 선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면 세상에 사는 그 누가 나를 내가 원하거나 바라는 표현대로 인정하겠습니까?

 

올바르게 산다는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삶이 향해야 할 곳은 사람이 자기의 고개를 들어 높은 곳을 향해야 합니다. 내가 이룬 결실을 생각하고 즐긴다고 발이 있는 아래를 보며 살지 말고, 하느님의 영광이 우리를 비추는 시온산을 향해야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높은 이상을 지니고 나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때 우리는 높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신앙인으로서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다고 하여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죄인이지만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우리가 세상의 의미와는 다르게 신앙의 의미로 바르게 이해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앞에 올바른 삶의 예물을 준비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인사이동으로, 본당을 떠나기에 한동안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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