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31일 (일)
(녹) 연중 제22주일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희년에 떠나는 로마: 로마 7대 성당, 성 세바스티아노, 성 라우렌시오, 성 십자가 대성당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8-27 ㅣ No.2418

[희년에 떠나는 로마 VIII] 로마 7대 성당, 성 세바스티아노, 성 라우렌시오, 성 십자가 대성당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0)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아피아 가도(Via Appia Antica) 위에 자리한 성벽 밖의 성 세바스티아노 대성당(Basilica di San Sebastiano fuori le mura)은 박해 시대를 이겨낸 로마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주요한 공동묘지 중 하나였으며, 사도들에 대한 기억과 성인의 유해를 품고 있는 거룩한 장소로서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프랑스 남부 나르본에서 태어난 성 세바스티아노는 로마에서 군대에 입대하였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신임을 얻어 친위대의 지휘관에 오르지만, 황제의 포악한 박해에 맞서 당당히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황제는 그를 궁수들에게 넘겨 사형에 처했으나, 온몸에 화살을 맞고 쓰러진 성인의 시신을 이레네라는 부인이 찾으러 가서, 살펴보니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극진히 간호하여 기적적으로 회생시켰습니다. 다시 황제 앞에 나타난 성인을 보고 경악한 황제는 이번에는 몽둥이로 때려죽인 다음 하수구에 던져 버렸습니다. 순교한 후에 성인은 루치나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시신을 찾아 공동묘지에 매장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 공동묘지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유해를 258년부터 옮겨 온 장소였고, 이러한 이유로 4세기 초반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특별한 장소에 ‘사도들의 대성당(Basilica Apostolorum)’을 세웠습니다. 367년에 대성당은 교황 성 다마소 1세에 의해 성 세바스티아노의 이름으로 봉헌되었는데, 교회는 군인과 궁수, 그리고 전염병의 수호성인을 공경하며 그의 순교일인 1월 20일을 그의 축일로 지냅니다. 17세기에 이르러 교황 대성당의 명의 사제였던 보르게세 가문의 쉬피오네 추기경의 후원으로 플라미니오 폰치오가 설계를 맡아 1613년에 새롭게 완성되었습니다. 원래 2열 3랑의 바실리카 양식을 하나의 신랑(身廊)을 가진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한 성전에 들어서면 베르니니의 유작으로 알려진 ‘세상의 구세주(Salvator Mundi)’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성인을 관통했던 화살, 성인을 묶었던 기둥, 그리고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Domine, Quo vadis?)’ 사건과 관련된 예수님의 발자국이 새겨진 돌바닥 등이 보존된 성유물 경당이 있으며, 지하 카타콤베에 안치된 성인의 무덤과 수직으로 일치하는 위치에 세워진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에 있는, 화살을 맞고 누워있는 성인의 조각상을 바라보며 순교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성벽 밖의 성 로렌조 대성당(Basilica di San Lorenzo fuori le Mura)은 동쪽으로 뻗어 나가는 티부르티나 가도(Via Tiburtina)를 따라 자리한 성 로렌조(라우렌시오)의 무덤 위에 세워졌습니다. 스페인 북부 우에스카에서 태어난 성 로렌조는 로마에 와서 교황 시스토 2세의 수석 부제를 지내던 중,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로 인해 258년에 순교하였습니다. 카타콤베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시스토 2세가 동료 부제들과 함께 순교 당할 때, 로마의 집정관은 로렌조를 살려두고 교회의 모든 보물을 즉시 황제에게 바치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성인은 교회의 재산을 모두 모아 정리하려면 3일의 여유가 필요하다며 시간을 얻은 후, 가난한 이들에게 교회의 재산을 나누어 주고는, 집정관에게 병자와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타나 “이 사람들이 교회의 재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집정관은 그를 체포해 온갖 고문으로 괴롭히다가 뜨거운 석쇠 위에 눕혔는데, 석쇠 위에서 살이 익어가자 “이쪽은 다 익었으니 뒤집어라.” 또, “이제 다 익었으니 뜯어먹어라.”라고 당당히 말하는 성인의 몸에서 향기가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과 요리사 그리고 소방관의 수호성인을 공경하며 그의 순교일인 8월 10일을 그의 축일로 지냅니다.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 로렌조의 이름으로 성당을 세웠고, 6세기에는 교황 펠라지오 2세가, 13세기에는 교황 호노리오 3세가 성전을 크게 개축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2열 3랑의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성전 내부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22개의 이오니아식 대리석 기둥이 길게 늘어서 있고, 바닥과 복음 선포대, 그리고 부활 촛대에서는 13세기 코스마티 공방이 제작한 섬세한 장식이 빛납니다. 제대 위 개선 아치에는 6세기 비잔틴 모자이크가 남아 있는데, 중앙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 베드로와 바오로, 부제 순교자들인 성 스테파노와 성 로렌조가 서 있고, 한쪽에는 의뢰자로서 교황 펠라지오 2세가 성당의 모형을 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 십자가 대성당(Basilica di Santa Croce in Gerusalemme)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가 예루살렘 순례 중 발견한 성유물들을 로마로 가져오면서 황제 별장인 세쏘리움(Sessorium) 궁전 일부를 개조해 이 유물들을 보존할 성당으로 봉헌하였고, 그 기초에는 실제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흙을 덮어 이곳이 곧 ‘로마 안의 예루살렘’이 되게 하였습니다. 2열 3랑의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1743년에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후원으로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정면부와 타원형 현관이 더해져 오늘날의 우아한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성전 후진부에서는 안토니아쪼 로마노가 그린 프레스코화를 통해 헬레나 성녀가 십자가를 발견하는 장면을 자세히 볼 수 있고, 중앙 제대를 바라보며 왼쪽 통로를 따라 만나게 되는 성유물 경당에는 십자가의 나무 조각, 가시 면류관, 못, 십자가의 명패, 우도(착한 강도)의 십자가 횡목, 그리고 사도 토마스의 손가락 등이 보존되어 있어 순례자들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직접 마주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가 목숨을 바쳐 전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간직한 로마는 특별히 희년이라는 이름 안에서 오늘도 또 한 사람의 아브라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일곱 성당을 중심으로 걷는 로마의 순례길 안에서 순례자들은 잠시 일상을 떠나 앞서간 신앙 선배들의 발걸음에 자신을 겹쳐 놓으며, 자신이 받은 고유의 소명을 새롭게 다짐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루카 24,48)

 

[2025년 8월 24일(다해) 연중 제21주일 인천주보 3-4면, 김세웅 디오니시오(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쥬빌레오 로마』 저자)]



1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