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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44: 거인의 어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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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44) 거인의 어깨
구글 학술검색 웹사이트(scholar.google.co.kr) 화면에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는 아이작 뉴턴의 말이 있다. 이것은 뉴턴이 1676년에 자신과 경쟁 관계에 있던 과학자 로버트 훅에게 보낸 편지 중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글에서 온 것으로 출처는 옛 라틴어 문구 ‘Nanos gigantum humeris insidentes’(거인의 어깨 위에 앉은 난쟁이)이다. 뉴턴이 언급한 거인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바탕으로 태양계 행성들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설명한 케플러, 고전 역학의 기초를 마련한 갈릴레이, 그리고 기계론적 자연 철학을 제시한 데카르트였다. 그들은 뉴턴이 과학 혁명을 완성하는데 스승과도 같은 역할을 한 거인들이었다.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의 작품 「태양을 찾아가는 눈먼 오리온」에는 그리스 신화 속 거인 사냥꾼 오리온의 어깨 위에 난쟁이 캐달리온이 올라가 있다. 캐달리온은 오리온의 어깨 위에 올라타 더 멀리 보며 그와 함께 떠오르는 태양을 찾아가고 있다. 뉴턴은 자신을 난쟁이 캐달리온에 비유한 것이다. 뉴턴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힘과 물체의 운동 원리를 수학적으로 풀이해 자연 현상을 설명했다. 그의 과학 사상은 사회 전반에도 큰 영향을 끼쳐서 18세기에 유럽에서 계몽주의 시대가 시작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현대의 영국인들은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라는 문장을 2파운드 동전 테두리에 새겨 뉴턴을 기념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에는 뉴턴 못지않은 위대한 교회학자(Doctor of the Church)들이 있는데 성 아우구스티노, 성 암브로시오, 성 예로니모, 성 토마스 아퀴나스 등 깊은 지식, 굳건한 신앙 그리고 거룩한 삶을 산 저술가나 설교자에게 가톨릭 교회가 부여하는 칭호로 현재 33명의 교회학자가 있다. 그들의 삶과 신앙은 우리가 올라서야 할 거인의 어깨다.
19세기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1번은 ‘거인(Titan)’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말러는 독일 문화권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으며 37세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말러의 교향곡 제1번 ‘거인’은 그의 남다른 이력과 젊은 날의 경험이 스며든 곡으로 50분이 넘는 긴 음악을 듣고 있으면 거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음악에서 거인은 말러 자신이었다. 뉴턴처럼 거인의 어깨에 올라설 수 있도록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어깨를 내줄 수 있는 거인이 될 수 있도록 세속의 삶과 신앙생활의 조화 속에서 나의 삶은 더 치열하고 진솔해져야 한다.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인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루카 6,39-40)라는 말씀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스승이 되는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멀리 그리고 더 깊이 보는 삶을 살기를 기도해본다. ‘짐을 덜게 해달라고 빌지 말고, 강한 어깨를 달라고 기도하라’ - 성 아우구스티노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9월 14일, 전성호 베르나르도(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0 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