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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가톨릭 신학: 그리스도인의 문법(삼위일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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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0-20 ㅣ No.6272

[가톨릭 신학] 그리스도인의 문법(삼위일체론)

 

 

언어를 익힐 때 문법을 배우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문법은 단어를 가지런히 묶어 그 뜻을 더 분명하게 하고, 정확한 소통을 도와주니까요. 문법이란 말은 언어 공부에만 쓰이는 게 아닙니다. 흔히 비유적으로 시대에 따라 ‘사회의 문법’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공감이 중요해진 오늘날에는 ‘감정의 문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곤 합니다. 전문가들의 문법도 있습니다. 영화감독은 시점 · 편집 · 대사 · 촬영 기법을 엮어 영화의 문법을 만들고, 건축가는 생각과 공간 배치, 재료 선택을 통해 자신만의 문법으로 건물을 짓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일하는 모든 방식 속에는 문법처럼 보이지 않는 규칙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문법은 무엇일까요? 신학자 칼 라너의 창조신학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창조 안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통해 그분의 문법을 읽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안식을 취하셨습니다. 세상을 만드는 그 모든 순간에는 사랑의 방식이 함께했지요. 창조로 만들어진 피조물이 언어의 ‘메시지’에 해당한다면, 사랑으로 일하신 규칙은 드러나지 않은 ‘문법’인 셈입니다. 창조는 사랑이라는 문법으로 쓰인 거대한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의 문법’은 삼위일체 안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성부 · 성자 · 성령의 세 위격으로 존재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 위격을 이어주는 관계의 끈이 바로 사랑이지요. 성부께서는 사랑을 내어 주시고, 성자께서는 그 사랑을 받아 스스로를 내어 주시며, 성령께서는 그 사이를 잇고 그 사랑 안에 머물게 하십니다. 서로에게 군림하거나 분쟁하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연결되는 문법인 것입니다. 이 사랑의 문법은 우리 안에도 분명히 새겨져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모습대로 지으셨고,(창세 1,26 참조) 그 안에 삼위일체의 문법을 심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존재 방식이 사랑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움직이는 근본 원리도 사랑이어야 하겠지요.

 

문법은 책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사랑의 문법은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 살아가도록 이끌며, 그 길을 가꾸고 실현하도록 안내합니다. 이 사랑의 언어는 공동체 안의 오해와 상처를 치유하고, 신뢰를 담아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고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이미 새겨져 있던 문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드러난 하느님의 문법은 교회와 세상 한 가운데에서 더욱 또렷하게 복음의 문장으로 새겨지고, 그 문장은 다른 이들의 삶을 밝히는 빛이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어, 이 문법이 단순한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삶 속에서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2025년 10월 12일(다해)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서울주보 5면, 전인걸 요한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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