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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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나아만의 병을 옮겨 받은 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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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15:00 ㅣ No.8769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나아만의 병을 옮겨 받은 게하지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나아만은 북왕국의 숙적이던 아람 왕국의 직급 높은 장군이었습니다. 나병 환자였던 그는 엘리사의 조언에 따라 요르단강에 몸을 담근 뒤 병에서 해방됩니다. 구약 시대에 일어난 이 일은 하느님의 은총이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한정되지 않음을 암시하는 예가 됩니다(루카 4,27 참조). 곧 주님의 은총이 그분의 가르침과 더불어 세상 만민에게 전파되리라는 예고입니다.

 

한 가지 의문은 나아만이 나병 환자인데도 격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아람 임금이 아끼던 장군이라 궁전 출입도 가능했을 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아만의 병이 오늘날의 나병과 다른 종류였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나병”으로 옮겨진 히브리어는 [짜라앗]인데, 이는 건선과 백반을 비롯한 악성 피부병을 통칭하던 말입니다. 또한 옷이나 건물에 피는 곰팡이도 가리켰습니다. 신체의 일부가 문드러지는 나병은 구약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발굴된 구약 시대의 인골 어디에서도 이런 병의 흔적은 발견된 예가 없습니다. 나병은 기원전 200년경 등장한 걸로 추정되며, 오늘 복음에 언급되듯이 신약 시대에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고려하면, 나아만은 모종의 악성 피부병을 앓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2열왕 5장에 따르면, 나아만은 병에서 해방되지만 그의 병은 다른 이에게 옮겨가게 됩니다. 바로 엘리사의 종 게하지에게 말입니다. 사실 나아만은 상당한 선물을 챙겨 엘리사를 찾아왔지만, 엘리사는 나아만이 치유된 뒤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 일을 해주셨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하지는, 자기 주인이 이방인에 불과한 나아만에게 너무 관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과 엘리사는 주님의 백성이고 나아만은 부정한 이방인인데, 이스라엘이 누려야 할 은총을 나아만이 아무 대가 없이 누리는 건 옳지 않다고 여긴 것입니다. 예언자 요나가 이방 성읍 니네베로 파견되었지만 자신의 소명을 알고는 그 일을 피해 도망갔을 때(요나 1,2-3)와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게하지는 엘리사 몰래 나아만을 뒤쫓아가 기어이 선물을 받아옵니다(2열왕 5,20). 그의 이런 못난 행동 때문에, 나아만에게 일어났던 신성한 기적이 대가나 바라는 싸구려 마법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비록 나아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도 말입니다.

 

이런 게하지의 행동을 엘리사가 눈치 채고 꾸짖습니다. “지금이 돈을 받아 옷과 올리브 나무와 포도밭, 양과 소, 남종과 여종을 사들일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너에게 옮아 네 후손들에게 영원히 붙어 다닐 것이다”(25-26절). 오늘 복음에도 나병에서 해방된 사람이 열 명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들 중 예수님께 돌아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 사람은 단 한 명, 외국인이라 일컬어진 사마리아인 뿐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주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오히려 율법을 어기고 우상숭배에 빠졌으나, 외국인인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와 병이 낫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듯이 말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5년 10월 12일(다해)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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