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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23-24: 백혈병 진단, 급작스러운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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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 (23) 백혈병 진단, 급작스러운 죽음 ① 성 프란치스코가 예견한, 소년 카를로의 마지막 나날
2006년 9월 30일 토요일
카를로 성인이 다니던 레오 13세 인문 고등학교도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9월 중순에 개학했습니다. 카를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에서, 이후에는 아시시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새로운 학년을 의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했지요. 그런데 오늘 학교에 다녀온 카를로는 매우 피곤해 보였습니다. 체육 시간에 오래달리기를 한 탓이었을까요? 이날이 카를로의 마지막 등교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지요.
10월 1일 주일
카를로의 어머니는 아침 식사를 하는 아들을 보다가 오른쪽 눈 흰자위에 조그맣게 붉은 반점이 생긴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침의 쌀쌀한 기운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본당에서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나서는 카를로의 제안에 따라 가족이 다 함께 폼페이 성모님께 기도를 바쳤습니다. 묵주 기도 성월인 10월이었고, 10월 첫 주일에는 특별히 폼페이 성모님께 기도를 바치는 교회 전통을 카를로가 잘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자동차를 타고 베네고노로 향했지요. 이곳은 밀라노대교구가 운영하는 신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야외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근처 숲 산책도 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네 마리도 함께 갔는데, 카를로가 강아지들에게 나뭇가지를 던져주면 강아지들은 그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카를로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카를로는 매우 행복해 보였습니다. 저녁 무렵 집에 돌아왔을 때, 카를로의 안색이 좋지 않아 열을 재보니 38도까지 올랐습니다. 카를로 어머니는 해열제를 먹이고, 다음날에는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월 2일 월요일
카를로 어머니는 소아과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의사 선생님은 곧바로 집에 찾아와 카를로의 목이 빨갛게 부어올랐다며 항생제를 처방해주고 갔습니다. 카를로의 반 학생 중 절반이 독감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카를로 어머니는 독감 증상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카를로는 어머니와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고, 기도의 힘으로 기운을 차리고 나서는 학교 숙제를 하고, 컴퓨터를 켜고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온라인 전시회 작업에도 몰두했습니다. 열은 가시지 않았지만, 어쨌든 카를로는 생기 있는 모습으로 자기 일들을 해냈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카를로는 방에서 저녁 식사를 했고, 그동안 부모님은 카를로 옆을 지켜주었습니다. 사실 카를로는 어렸을 때부터 이따금 인후통을 겪었고 온전히 회복되려면 늘 일주일 이상 걸렸기에 이번에도 카를로 부모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카를로가 난데없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연옥을 거치지 않고 하늘나라에 곧바로 가기를 바라며, 저의 고통을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 봉헌합니다.” 장난기가 많고 늘 쾌활했던 카를로가 우스갯소리를 하는 거라 생각하며, 카를로 부모님은 그 말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10월 3일 화요일
인후통이 있고 열이 날 때 카를로는 이따금 야간 공포증을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카를로의 침대 옆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청했지요. 10월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밤중에 카를로 어머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성당 안에 있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도 있었어요. 저 위, 천장 위로 우리 아들의 모습도 보였는데 카를로의 얼굴이 매우 크게 보였지요. 프란치스코 성인이 카를로를 쳐다보더니, 카를로가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될 거라고 말했어요. 그때 저는 잠에서 깼습니다. 카를로가 신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어서, 카를로의 바람이 제 꿈에 나타난 거라고 확신했지요.”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10월 26일, 한상화 체칠리아(주교회의 사료실 부서장)]
[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 (24) 백혈병 진단, 급작스러운 죽음 ② 산소 호흡기 쓴 채 어머니와 함께 묵주기도 바친 카를로
2006년 10월 4일 수요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카를로 아쿠티스가 봉사의 참의미를 전하고 다른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하고자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이 웹사이트를 전교생에게 소개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카를로는 여전히 열이 있고, 독감 증상이 가시지 않아 집에서 쉬어야 했지요. 예수회 신부님들은 카를로가 직접 발표하지 못하더라도 예정대로 오늘 이 웹사이트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 카를로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모든 학생이 카를로가 만든 웹사이트를 좋아했고, 발표는 성공적이라는 연락이었지요. 카를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이날은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념하는 날이었기에 카를로 어머니는 해마다 그랬듯이 초콜릿을 사왔고, 카를로는 초콜릿을 먹으면서 모든 일이 잘될 거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10월 5일 목요일
카를로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귀밑샘이 꽤 부어있었습니다. 카를로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에게 전화했고, 집에 찾아온 의사 선생님은 카를로를 살펴보더니 귀밑샘염이 생긴 것 같다며 지금 하고 있는 치료를 계속해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습니다. 카를로의 소변에 피가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원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임상검사실에 소변을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카를로 가족은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닐 거라고 믿으며 검사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10월 8일 주일
카를로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화장실을 못 간다고 말했습니다. 심각한 쇠약 증세가 들이닥친 것이었지요. 카를로 부모님은 힘을 합쳐 겨우겨우 카를로를 화장실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깜짝 놀란 카를로 어머니는 예전 소아과 의사에게 전화했습니다. 그 의사 선생님은 카를로를 ‘데 마르키’(De Marchi) 병원으로 곧장 데리고 가라고 안내해주었고, 특별히 소아 혈액학을 전담하는 진료부장에게 전화하여 서둘러 검사를 진행하고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카를로를 병원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큰 숙제였습니다. 하필이면 집안일을 돌봐주던 라제시씨가 휴가를 낸 날이었지요. 고심하던 부모님은 카를로 방에 있던 바퀴 달린 의자에 카를로를 겨우 앉히고 자동차까지 옮겼습니다. 평소보다 길이 많이 막혀 카를로 부모님은 조급한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 일차 검사를 마쳤습니다.
백혈병 진단
“카를로는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카를로 어머니를 보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전조 증상이 없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발생하는 침묵의 질병이라고 했습니다. 종양 세포가 급속도로 증식하면서 사실상 조혈모세포의 기능을 파괴해버리는 병이라고도 했지요. 의사 선생님은 당사자인 카를로에게도 숨기지 않고 상황을 그대로 설명했습니다. 침착하게 앉아있던 카를로는 의사 선생님이 나가자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경종을 울리셨네요!”
그날 카를로는 산소호흡기를 쓴 채 중환자실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호흡을 도와주는 장치였지만 입 안에 고인 가래를 제대로 뱉을 수도 없고 얼굴을 움직일 수도 없었지요. 새벽 한 시가 되어 병원 방침에 따라 카를로 어머니는 카를로를 중환자실에 혼자 두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카를로가 어머니에게 묵주기도를 함께 바치자고 했습니다. 산소호흡기를 쓴 아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며 카를로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11월 2일, 한상화 체칠리아(주교회의 사료실 부서장)] 0 27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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