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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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10) 만나기 위한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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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05 ㅣ No.2212

[영성의 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10) 만나기 위한 순례

 

 

얼마 전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종교 간의 이해와 화합을 증진하기 위해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이웃종교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을 ‘가톨릭목포성지’에서 진행하였습니다. 7개 종단(천주교, 개신교, 불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민족종교연합회) 사람들 약 40명이 함께 천주교의 문화를 체험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천주교를 이해하고 편견의 시각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가톨릭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2박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어떤 것들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무엇을 느끼게 해줘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쉽게 설명하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단어 하나, 행동 하나도 낯선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제로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려 노력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가톨릭 신앙을 가졌다는 것에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느꼈던 일들은 무엇인가? 상처받아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신앙인으로 무엇을 통해 위로받고 용기를 얻었는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보았습니다. 누군가를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면서 내가 먹어보고 맛없는 음식을 내놓으면서 맛있게 먹으라고 얘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프로그램을 마무리 짓고 다시 되돌아보았습니다.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개인적인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은 어쩌면 저의 삶과 제가 살아가고 있는 행복한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위로받았던 그 시간에, 내가 하느님을 느끼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던 그 장소에, 부끄럽고 나약한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과도 같은 그 무엇에 잠시 머물렀던 것입니다. 누군가와의 진정한 만남은 그의 이름을 알고 취향을 알아가며, 같은 공간에 앉아 공동의 관심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만남은 어쩌면 ‘각자가 살아가는 자신의 세상에서 떠나 상대의 세상에 초대되어 자신을 그곳에 잠시 머물게 하는 여정’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가 ‘너’를 만나는 것은 ‘너’의 환경에서 ‘너’만을 끄집어내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너의 환경’ 속으로 떠나는 순례입니다. ‘너’와의 만남 안에서는 ‘너’가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일도,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고 증오하는 무엇도 함께 만나게 됩니다. 그래야만 그 만남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하나의 사건을 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창조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집니다. “희망을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의 순례”도 각자의 삶을 떠나 서로의 세상에 초대되어 머무는 진정한 만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만나야 하는가?

 

잘 쉬기 위해서, 잘 바라보기 위해서 떠나는 순례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순례이기도 합니다. 그 세상은 하느님께서 함께하는 세상입니다. 보이지 않고 감추어져 있지만, 자세히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만나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가장 먼저 “나 자신”을 만나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나 자신과 잘 만나고,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내가 기도하고, 내가 하느님께 청원하는 그 진짜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수능시험을 앞둔 자식을 위해 한 어머니가 100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100일을 거르지 않고 열심히 기도한 이유가 뭘까요? 자식을 사랑하고 잘 되기를 바란다는 명목을 내세워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와 체면 때문에,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면서 우리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먼저 때로는 나약하고 때로는 추잡하며 때로는 약삭빠른 자신과 만나야 합니다. 그 진정한 이유와 대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언덕에서 자신과 만났습니다.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자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루카 22,41-42) 자신의 부족하고 나약한 마음, 회피하고 도망치고 두려워하는 마음과 대면하셨습니다. 그렇게 자신과의 만남은 하느님과 만나는 여정의 첫걸음입니다. 

 

나 자신의 이유와 만났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과 만나야 합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내 주변의 삶”과 만나야 합니다. 내 삶에서 무엇을 만나고 바라보아야 할지는 “성모님과 엘리사벳의 만남”(루카 1,39-45)이 우리는 이끌어 줍니다.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저는 엘리사벳의 인사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80세가 넘은 엘리사벳이 20살도 되지 않은 마리아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높은 지위에 있던 대사제의 아내가 시골 출신의 가난한 소녀에게 최대의 예우를 갖춥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겉모습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녀는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예수님, 다시 말해 하느님의 신비를 발견하고 바라봅니다. 그래서 “여인 중에 가장 복되다”라고 칭송하며 뱃속의 아기도 축복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주변과 만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신비와 만나는 것입니다. 너무나 보잘것없는 사람에게서 하느님이 신비와 손길을 발견하고, 누가 보아도 피하고 싶은 상황에서 하느님께 주시려는 은총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피투성이의 죽음과 고통의 십자가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부활의 영광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세상에서 실현되는지, 그래서 나는 그 삶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지 선택하고 행동하는 여정이 바로 진정한 만남의 여정입니다. 그 여정은 더 이상 고통과 인내의 여정이 아닙니다. 감사와 기쁨의 여정이 됩니다. ‘만남을 위한 순례’는 잠시 나의 세상에서 떠나 하느님의 나라에 머무르는 순례입니다. 나의 삶이지만, 고통과 아픔이 있는 삶이지만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손길과 은총을 발견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랑과 희망의 순례입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0월호, 최종훈 토마스 신부(가톨릭목포성지 담당, 광주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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