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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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신앙의 터전: 광주대교구 임동 주교좌성당과 북동 공동주교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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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05 ㅣ No.1236

[신앙의 터전] 광주대교구 임동 주교좌성당과 북동 공동주교좌성당


광주지역 복음화의 못자리

 

 

 

광주대교구(교구장 옥현진 시몬)에는 주교좌성당과 공동주교좌성당이 있다. 주교좌성당은 교구 내 모든 중요한 전례, 특히 교구장 대주교가 집전하는 중요 미사와 전례가 이루어지는 성당이다.

 

임동 주교좌성당(주보성인 성 안셀모, 주임신부 임호준 대건 안드레아)은 1967년 1월 1일에 설립된 본당이다. 미국인 안셀모 형제의 도움으로 마련한 3,000여 평의 대지 위에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부 파트리치오(Patric Brandon) 신부가 1967년 4월에 작은 성당을 지었다. 

 

1970년대 후반 천주교 입교 신자들이 급증하자 이전의 주교좌성당이었던 북동성당은 건물이 노후화되고 협소해 주교좌성당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에 교구는 1979년 6월 대성당 건립 추진을 의결해 임동에 새 주교좌성당을 짓기로 했다. 1980년 12월 15일에 착공하여 1983년 9월 28일 당시 교구장 윤공희 대주교 주례로 43년간 광주대교구에서 사목하면서 교구발전에 기틀을 놓은 제5대 교구장 고(故) 현 하롤드 대주교를 기념하는 성당으로, 또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성당으로 주교좌성당을 봉헌했다.

 

주교좌성당은 처음에는 목포 산정동본당(1937~1957년)이었다가 광주 북동본당(1957~1983년)으로, 다시 임동본당(1983년~현재)으로 이관되면서 다소 복잡한 변천사를 가지고 있다.

 

 

43년 동안 교구 사목의 중심지인 ‘임동 주교좌성당’

 

임동 주교좌성당의 건축물은 장방형의 바실리카식 교회 건축 양식으로 설계되어 외관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부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품고 있다. 담장을 헐어 시민에게 개방한 마당과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 지붕의 예수 성심상은 성당을 찾는 교구민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인자하게 환대한다. ‘인간을 향한 무한한 사랑인 예수 성심’을 마음에 모시면 포근함과 경건함이 느껴진다.

 

 

 

“새 성전을 우리의 힘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전 교구민이 많은 묵주기도를 바치며 공동체 자력으로 건립되었다. 화려하거나 오랜 역사를 지닌 주교좌성당은 아니지만 지난 43년 동안 교구 사목의 중심지로서 충실한 역할을 해 왔으며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주는 열린 교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에는 6.25 발발 75주년을 맞아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를 봉헌했다.

 

공동주교좌성당인 북동성당(수호성인 예수성심, 주임신부 홍진국 안토니오)의 모태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광주로 귀양 온 홍재영과 그 일가족이 천주교를 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광주에 살던 신자 대부분이 체포돼 전주 감영에서 순교하는 바람에 천주교 역사가 끊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신자들이 광주에서 살며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1929년 나주 노안 양천리본당 주임 박재수 신부가 광주에 사는 10명의 신자로 공소를 시작해, 1933년 5월 21일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광주지역 첫 본당으로 초기의 명칭은 ‘광주본당’이었으나 1949년에 ‘북동본당’으로 개칭되었다. 처음에는 목조건물로 지어졌는데, 현재의 건물은 제4대 주임 구 토마스(Thomas Quinlan) 신부 때인 1938년 6월 26일에 봉헌되었다. 

 

초기에는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성당 구내에 혜성학원을 설립하여 일제 치하에서 배움에 목말랐던 이들의 교육에 힘썼으며, 해방 후에는 성심유치원을 개원, 유아교육을 통해 광주시민 교육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광주지역 첫 본당으로 신앙의 못자리 역할 한 ‘북동 공동주교좌성당’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주둔지로 침탈되는 수난을 겪었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성당으로 피신 온 시민들과 학생들의 방패막이 되어 계엄군이 쏜 총탄을 몸으로 막아내기도 했는데, 성당과 사제관 여기저기에는 민족사의 애환을 보여주듯 총탄 흔적들이 남아 있다.

 

북동성당은 1957년 1월 21일 광주지목구가 대목구로 승격되면서 주교좌성당이 되었으며, 1983년 임동 주교좌성당이 봉헌되기 전까지 남동, 담양, 계림동, 월산동, 임동, 중흥동 본당을 분가시키면서 광주지역 복음화와 신앙의 못자리 역할을 했다. 북동성당은 한국 초기 교회 건축사적인 가치와 광주지역 최초로 설립한 천주교회 본당이라는 역사성을 인정받아 1999년 성당과 사제관이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

 

 

 

2025년 ‘희망의 순례자들’ 희년을 맞아 광주대교구에 지정된 순례지는 교구 내 순교 성지(가톨릭목포성지, 곡성성당 옥터, 나주순교자기념성당, 영광순교자기념성당) 외 임동 주교좌성당, 북동 공동주교좌성당, 여수 동산동성당, 소록도성당, 순천 저전동성당, 해남성당 등 총 10곳으로, 남은 희년 기간에 광주대교구를 방문하는 교우들이 순례지를 순례하며 전대사의 은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천주교 광주대교구 홈페이지, 임동본당 50년사>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0월호, 한혜순 수산나(광주 S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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