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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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인은 누구실까?: 묵주기도의 모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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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인은 누구실까?”] “묵주기도의 모후”
지난달 사제 정기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소임을 받았습니다. 제가 떠나는 시간에 맞춰 교우분들이 성전에 모여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저도 같이 기도하는데 주임 신부로서 본당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마지막 묵주기도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인사를 드려야겠다 싶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저는 교우분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묵주기도를 바치는 시간이 가장 좋았습니다. 신심 깊은 분들과 함께 기도할 수 있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정성을 다해 미사에 참여하고 묵주기도를 드리면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기도했던 기억이 마음속 깊이 남아 저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될 것입니다. 교우분들과 함께 지냈던 시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본당에서 만난 신심 깊은 교우분들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충실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었습니다. 사실 어르신 대부분은 하느님께 희망을 드리는 신앙인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힘 있고 건강하고 부유하면 하느님께 희망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들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고, 더 많은 사람을 부리려 하면서 세상이 전부인 양 착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경배하기보다는 하느님을 이용하려 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묵주기도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께 인도하시는 분
본당의 어르신들은 거의 모두 궁핍하고 빈곤하던 시절 태어나 가난을 겪어야 했고, 젊은 시기를 고생하며 살아야 했고, 가족 부양에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분들입니다. 한국 사회가 단기간에 급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원동력이 어디 있을까요? 국가 발전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힘을 기울였습니다만, 그 뒤에는 자녀 교육을 위해 헌신한 지금의 어르신들이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의 정성과 노고를 양분으로 삼아 자녀들이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의 주역으로 성장했던 겁니다.
제가 만난 본당의 어르신 중에는 평생을 시장에서 계란 장수로 지내며 자녀를 명문대에 보낸 분도 계시고, 손바닥만 한 세탁소를 운영하며 아들이 미국 대학교수가 될 때까지 뒷바라지한 분도 계십니다. 자녀들은 출세해서 훌륭한 직장을 다니고 고급 아파트에 살지만, 막상 할머니들 집을 방문하면 허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장성한 자녀들이 연로한 부모님께 효도하는가?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대부분 어르신들은 정서적으로 방치된 채 늙고 병든 몸으로 근근이 살아가셨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르신들은 자녀들을 원망하지도 않고 서운해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주임 신부에게 쓸쓸한 마음을 비쳐 보였을 뿐입니다. 이제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이제 주님 없이는 어떤 희망도 없다는 듯 주님을 믿고 바라는 분들을 만나면서, 회심과 믿음은 과연 이런 것이구나 하고 저 또한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으니, 얼마나 은혜로운 시간이었겠습니까?
묵주기도는 어르신들이 선호하는 기도였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에 가장 근접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라 묵주기도 바치는 데도 정성을 다했을 겁니다. 희생과 헌신을 아는 이가 성모님의 마음도 더 깊이 알아봅니다. 성모님은 회심과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이들을 북돋워 주시고, 특별히 묵주기도를 통해 신자들을 삼위일체 하느님께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성모님을 ‘묵주기도의 모후’라고 고백합니다.
바오로 6세 성인 교황님은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에서 신앙생활을 위한 묵주기도의 가치를 상세히 일러줍니다.
먼저, 묵주기도는 성경에 기반하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기도는 모두 하느님 말씀에 근거하는데, 묵주기도는 참으로 복음에 뿌리내린 기도입니다.(「마리아 공경」 제44항)
둘째, “묵주기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구원 사건들, 곧, 동정녀의 잉태와 유년기의 신비들로부터 복된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의 파스카 정점의 순간들에 이르는 사건들을 질서 있게 연결”하면서 구원 역사의 핵심 사건을 드러내 줍니다.(「마리아 공경」 제45항)
셋째, 묵주기도는 그리스도 중심의 기도입니다. 성모송을 반복하며 그리스도께 지속적으로 찬미를 드리는 기도입니다.(「마리아 공경」 제46항)
넷째, 묵주기도는 관상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그 본질상 주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셨던 분의 마음으로 주님 일생의 신비를 묵상하게 하는 고요한 리듬과 지속성을 필요로” 합니다. “묵주기도의 다함 없는 풍부함이 여기서 열립니다.”(「마리아 공경」 제47항)
다섯째, 전례와 묵주기도는 풍요로운 관계가 있습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구원 사건을 관상하고 기념하면 구원의 신비에 더욱 깊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미사성제를 정성껏 거행하도록 북돋워 주고 기도하는 이의 마음 안에 신앙의 신비가 울려 퍼지게 합니다.(「마리아 공경」 제48항)
묵주기도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감사와 사랑 드려
본당 교우분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미사성제를 드릴 때마다 교황님의 가르침이 생각났습니다. 참으로 묵주기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있고 힘 있는 말씀으로 경청하게 해주었습니다. 묵주기도는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 사건에 깊이 참여하여 구원의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해주었습니다. 묵주기도는 주님께 시선을 맞추며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해주었습니다. 묵주기도는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바라보도록 신앙의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묵주기도는 정성을 다해 성체성사를 거행하며 주님의 사랑을 가까이 느끼도록 해주었습니다.
교우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드릴 때마다 묵주기도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자애로운 손길을 의식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성모님께서 본당 공동체를 돌보아주셨고, 은총의 힘에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이어가도록 교우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님의 말씀 그대로, 묵주기도는 “인생의 맥박이…하느님 생명의 맥박과 일치를 이루도록” 해주었던 겁니다.(「동정마리아의 묵주기도」 제25항).
주임 신부로 지내면서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이들과 함께 주님을 찬미하였고,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들과 함께 구원의 신비를 거행하였으니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묵주기도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성모님께서 교우들을 보살펴 주시고 주님의 길을 향해 굳건히 나아가도록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0월호, 노우재 미카엘 신부(부산교구 도시빈민사목)] 0 6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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