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6일 (목)
(녹)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성체의 기적, 오 세브레이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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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05 ㅣ No.2454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성체의 기적, 오 세브레이로 성당

 

 

 

- 오 세브레이로 정상의 일출

 

 

8㎏ 배낭을 메고 넘어진 남편

 

비아블랑카 마을은 지붕이 특히 조화롭고 예쁘다. 마을을 벗어나자 도로를 따라 쭈욱 길이 이어지고 또 길옆으로는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 물소리가 듣기 좋다. 앞에서 걷는 남자분은 스틱도 없이 잘 걷는다.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기로 했다. 앞의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걸음이 빨라지고 앞으로 쭉쭉 걷게 될 것 같았다. 도로를 가로질러 들어서니 밤나무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밤나무와 비슷하다. 산밤나무가 아니고 일부러 심어 수확하기 위해 심은 밤나무이다. 나무가 키가 크고 익숙한 밤 열매도 많이 열렸다.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인지 목재소도 보였다. 굵은 나무들을 잘라 그대로 쌓아 놓기도 하고 한쪽엔 잘라놓은 것들도 눈에 띈다. 

 

- 엘리아스 발리냐 신부님(좌) 갈리시아 지역 표지석(우)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소리 지르며 넘어졌다. 정말 깜짝 놀랐다. 휴대폰으로 남은 거리를 검색하다가 앞에 턱을 못 보고 고꾸라졌다. 8kg의 배낭을 메고 순식간에 넘어진 것이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하마터면 병원으로 실려 가 순례를 중도에 포기할 상황이 생길뻔했다. 사고는 순간이라더니 정말 아찔했다.

 

 

오 세브레이로의 생성 과정과 현재

 

엘리아스 발리냐 신부님(1929~1989)은 오 세브레이로에서 본당 신부님으로 사목하면서 프랑스 까미노를 알리고 정비하는 데 앞장선 분으로 알려졌다. 신부님은 1984년부터 주변 도움을 받아 프랑스의 국경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까미노 길을 따라 노란 화살표를 그려 넣었다. 까미노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까미노의 친구 협회’를 설립하고 알리는 데 공을 세웠다. 신부님의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순례길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부부도 화살표를 따라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음에 감사드렸다. 노란 화살표가 방향대로 가라고 안내해 주니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목적지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엘리아스 발리냐 신부님의 아이디어는 참신하고 놀랍다. 오 세브레이로 역사는 오래되었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사용되던 전통적인 초가집인 빠요사(Pallozas)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살 수 있게 지은 집으로 돌로 만든 건물 위에 초가를 얹은 형태이다. 

 

 

- 빠요사(좌) 오 세브레이오 공립 알베르게 건물(우)

 

 

오 세브레이로 정상에 흰 천막들이 보였다. 공립 알베르게는 하나인데 많은 사람이 모인 듯했다. 오르는 길은 가면서 계속 빙빙 돌았다. 능선 위에 능선이 있고, 고개 너머에 또 고개가 나왔다. 입에 단내가 날 즈음에 막판 힘든 길을 걷고 쭉 이어지는 길도 걷다가 차츰 정상으로 올라갔다. 오 세브레이로는 성체 성혈의 기적이 일어난 곳으로 알려져서 그런지 높은 고지대이지만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오름을 올라 올 때 상당히 숨이 차고 힘들었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신기하다. 사진을 찍고 500여 개의 침대가 있는 국립 알베르게로 가서 순례자 여권에 세요도 찍었다. 오 세브레이로는 1300m 고지대에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시골 장터에 간 것처럼 물건을 파는 분들과 사러 온 사람도 많았다.

 

- 오 세브레이오 정상 장터

 

 

오 세브레이로 성당 성체 성혈의 기적과 초 봉헌

 

성체 성혈이 일어난 산타 마리아 성당은 9세기 중엽 베네딕도회가 세운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프랑스 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오 세브레이로 성당에 성체 성혈 기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참조하여 적어 본다. 1300년경 독실하나 가난한 소작농 농부가 폭설을 뚫고 미사에 참석하려고 성당을 찾았다. 오만한 사제는 멸시의 눈초리를 숨기지 못하고 농부에게 빵과 포도주를 건넸다. 그 순간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했다. 성당 안의 마리아상도 기적적인 광경에 고개를 기울였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이 기적이 알려지면서 오 세브레이로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또 하나의 기적은 스페인 국왕이 성체와 성혈을 모셔가려고 특사를 보냈다. 성물을 싣고 20km쯤 왔을 때 말들이 멈춰 버려 놀란 특사가 말을 놓아주니 오 세브레이로 성당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국왕은 성물을 오 세브레이로 성당에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레스토랑으로 가서 순례자 메뉴를 먹고 성당으로 갔다. 저녁 미사에 참석하기 전에 우리는 초 세 개를 봉헌했다. 암 투병 중인 지인들을 위해, 기도와 응원으로 힘을 주는 은인들을 위해, 그리고 순례길을 끝까지 무사히 걸을 수 있도록 불을 켰다. 미사는 액자 안에 든 뼛조각에 입맞춤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당시 성당에는 따로 의자가 없어서 모두가 서서 미사 참례를 하였다. 피아노 반주자 형제님이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는 성가가 미사를 한결 거룩하게 만들어 주었다. 성가 목소리와 피아노 반주 소리가 듣기 좋아서 동영상을 찍었다. 

 

미사 후에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라바날 끌레멘스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눈앞에 적혀 있었다. ‘진짜 까미노는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시작된다’라는 말씀이 머리를 훅 때리며 진하게 까미노 순례가 마음에 새겨지는 듯했다.

 

 

- 오 세브레이오 성당 초봉헌(좌) 오 세브레이오 성당 미사(우)

 

 

마라톤 풀코스에 스틱은 필수다

 

예정에 없던 라바날의 연박으로 인해 마라톤 풀코스를 걸어야 했다. 새벽 6시에 총총히 박힌 별하늘을 머리에 이고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내리막을 걸었다. 뭔가 나타날 것 같은 불안감에 한 시간 정도를 거의 뛰다 싶게 내려온 내리막길은 다행히 도로로 이어졌다. 그러나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몸과 마음의 인내를 시험했다. 표지석을 보니 꽤 걸어 내려왔으나 아직도 1230m 고지에 있었다. 동터오는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잠시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참을 걸어 마을에 도착하니 소똥으로 지저분하고 냄새가 심해서 얼른 빠져나갔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또 길을 나섰다. 도로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가 오른쪽으로 한참을 내리막이다. 정말 멈출 수 없이 저절로 막 떨어지는 느낌이다. 언제 이 길을 다 내려가나 막막했는데, 내리쏘듯이 계속 내리막이 이어진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허벅지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다행인 것은 스틱을 사용해 앞을 지탱해 주어 힘을 주어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스틱이 없었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순례길에서 스틱은 필수품이다. 자신의 체력만 믿고 걷다가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스틱은 꼭 챙겨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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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영 미카엘라는 2002년 세례받고, 2008년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하여 Pr. 단장, Cu. 단장, Co. 부단장으로 활동하였다. 2019년 8월 남편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를 38일간 다녀오고, 2021년 ‘사진으로 보는 우리 부부 산티아고 순례길’, 2024년 ‘열정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출간했다. 현재는 플랫폼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활동 중이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0월호, 신미영 미카엘라(청주교구 용암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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