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6일 (목)
(녹)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사회 일반인들의 삶을 제시하는 교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05 ㅣ No.1915

[돌아보고 헤아리고] 사회 일반인들의 삶을 제시하는 교회

 

 

한국교회 첫 시복식이 있던 1925년 7월, 교우 수가 약 10만 명이었다. 100년 뒤인 오늘에는 600여만 명을 헤아린다. 총인구의 11% 정도면 교회 내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며 살 수 있을 만큼의 성장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자들끼리만 제대로 사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류 구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회 초기, 전혀 모르는 나라에 입국한 우리 선교사들의 열망도 인류

구원이었다.

 

지난달에는 ‘교회사연구학회’ 창설과 생동하는 교회의 역사 연구를 생각했다. 그에 이은 ‘담론’으로 아직은 신자가 아닌 일반인·일반사회가 가톨릭적인 삶을 살도록 이끄는 방법을 모색한다. 지금은 교회를 건설하고 키우는 데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믿지 않는 이웃들도 실천하도록 초대할 때이다.

 

파견(선교)의 삶을 사는 길은 우리의 일상생활, 미소, 우정을 그대로 믿지 않는 이웃과 나누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교회는 스스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생활에서 잘 실천하고 있지만, 반면에 이것을 일반사회에 확대하는 데에는 소홀한 것 같다.

 

한 예로 우리 사회의 축첩 관행을 들 수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교회 창설 때부터 축첩을 금했다. “천주교인은 첩을 둘 수 없고 또 첩도 될 수 없다.” 첩이 있는 경우는 세례도 받지 못했고, 이를 모르고 신자로 입문한 경우라도 영성체를 할 수 없었다. 1799년 청주에서 순교한 원 야고보는 첩을 내보내고서야 주문모 신부에게 성사를 볼 수 있었다. 공소회장은 축첩 여부를 파악하여 사목 방문 나온 사제에게 아뢰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교우촌 현지조사에서 아직까지 축첩의 사례는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 축첩 금지법은 해방 후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할 당시, 장면 박사가 제안했다. 그런데, 법이 제정된 10여 년 후인 1960년대 후반에 한국부인회에서 “축첩한 정치인을 당에서 공식 후보로 추천하지 말라”고 건의한 것을 보면, 그때까지도 축첩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면 박사가 법으로까지 제청한 이 현상에 대해 교회는 별말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는 줄곧 과부의 재가를 실천해 왔지만, 과부 재가 금지를 철폐하자고 외쳐 통과시킨 사람들은 천주교 창설 이후 100여 년이 지난 동학혁명 때의 천도교들이었다. ‘한국부인회 70년사’를 준비하면서 한국부인회가 여성들의 상태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일반 여성들의 가정생활, 시부모와의 관계, 소비자 물가 등 일상생활을 깊이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나갔다. 반면에, 나는 초대교회 여성들의 활동에 주목하고 한국교회에서 강완숙 등 여성 순교자들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했는지, 깨달은 바가 무엇인지에 관심 갖고 외쳤지만, 정작 그것이 오늘날 여성들 생활에 어떤 식으로 작용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데는 약했다.

 

새삼, 개화기 『경향잡지』가 법률 상식을 다룸으로써 일반인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사실을 떠올려 본다. 당시 교회는 사회가 급변하면서 새로 생기는 법률의 내용과 생활에서의 적용 방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인들이 ‘변화하는(신식)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왔다.

 

교회에서 초기부터 운영해 왔던 ‘시약소’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시약소를 운영할 때 교우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다. 이 역할을 병원에 넘긴 오늘날에는 외교인에게 이에 버금가는 또 다른 사랑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아픈 이들이 병원에 가기 전에, 혹은 치료하는 과정에서 병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앓는 이들이 마음 놓고 증상을 호소하고 불안을 나눌 수만 있어도 큰 치료가 된다. 또 ‘마음이 아픈 이’들은 시공간, 빈부를 넘어 언제나 존재한다. 초대교회에는 성당을 찾아온 사람, 성당에 손이 닿는 사람만 성당으로 이끌게 되는 한계를 넘어서는 ‘각오와 여러 배려’가 있었다.

 

교회 안에서 옳은 도리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들을 신자들 사이에서만 지켜서는 안 된다. 일반인들이 옳게 살지 않으면 그 사회 속에 사는 신자들도 ‘신자답게’ 살기 힘들다. 인간의 도리를 사회인들도 지킬 수 있도록 초대하는 주장과 계기, 이벤트들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실질적인 선교로 이어질 수 있다. 독립운동이나 사회정의 실현 같은 ‘큰일’만이 일반인을 신자

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는 진실된 기록이나 정보를 정확히 읽어 내는 일에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진정한 평론 문화의 확립’이다. 읽는 일은 사실을 파악하는 데 기본이다. 지금같이 다량의 책이 출판되고 있는 때에는 제대로 읽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저서들이 나오면 칭찬 일색의 소개평들 위주에 머물렀다. 나는 정년 직전에 ‘평론 잡지’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 또한 무산되었지만, 잡지로 출발하고자 했던 이유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평론은 아직 1인이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단단한 서평 팀이 형성되어, 상호 토론으로 책을 소개하고 보완하고 비평하면 실상 파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선명한 평론은 독자들에게도 공부하는 시간과 노력을 크게 절약해 준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비종교인은 전체 인구의 63%나 된다고 한다. 게다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감소하고 있다. 물론, 어떤 경우든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일 뿐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성령께서 하신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늘 그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면, 인류 구원(진정한 선교)이라는 목표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교회와 역사, 2025년 8월호, 김정숙 소화 데레사(영남대학교 명예교수)]



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