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9일 (수)
(녹)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심리: 삶의 정답을 찾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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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1-18 ㅣ No.2214

[영성심리 칼럼] 삶의 정답을 찾으셨나요?

 

 

이제 에릭슨 발달 모델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 여덟 번째 단계(65세 이상)의 과업은 ‘통합성 대 절망’입니다. 노년기인 이 시기에 우리는 신체적인 노쇠를 경험하고, 직업에서 은퇴하거나 친한 친구 또는 배우자의 죽음 등으로 인생의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회상하면서 그 삶이 가치 있었는지, 과연 잘 살아온 것인지 되돌아보게 되죠.

 

스스로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 왔다고 느끼게 되면 점점 더 자아 통합이 이루어집니다. 삶에 만족을 느끼고 자신과 타인을 수용하며, 죽음 앞에서도 평온해집니다. 반면, 자기 삶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거나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되면 불만과 절망에 빠지며, 우울감과 무력감에 더해 죽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굳이 에릭슨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고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모르지 않지만,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과업입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노년의 시기에 자아 통합을 이루려면, 성공적인 삶이 전제 조건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어떤 삶이 성공적인 삶일까요? 재산? 사회적 지위? 자녀 양육? 어떤 것이 성공적인 삶을 가늠하는 기준일까요? 반대로, 실패한 삶은 또 어떤 삶입니까?

 

무엇이 정답이라고 딱히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성공적’이라는 표현의 의미도 되짚어 보아야겠지만, 어떠한 삶을 성공 혹은 실패한 삶이라고 느끼는지에 대한 기준은 우리 각자가 찾아야 할 테니까요.

 

다만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내가 살아온 삶을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돌아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에서 온전히 자유롭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 혼자 독불장군으로 살겠다는 것도 아니죠. 남의 시선이나 기준을 의식할 수밖에 없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기준 위에 확실하게 서 있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계속 휘둘릴 따름입니다.

 

둘째는, 지난 삶을 가늠하는 나의 기준을 하느님의 시선에 맞추면 좋겠습니다. 앞서 삶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을 여쭈었지만, 더 나아가 하느님의 기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떠한 삶이 하느님 보시기에 성공한 삶이고, 실패한 삶일까요?

 

삶에는 아픔도, 후회도, 실수도, 잘못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당신 뜻대로 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이지, 우리의 부족함이나 약함, 죄 그 자체는 아니지 않을까요? 하느님 보시기에는 모든 삶이 귀하고 소중한데, 나만 혼자 스스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삶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시고 주신 선물입니다. 이를 깨달을 때, 마음에서 감사가 우러나옵니다. 그리고 지난 모든 시간을 하느님의 선하심 안에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이 바라는 삶의 ‘통합’입니다.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욥 1,21)

 

[2025년 11월 16일(다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대신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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