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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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성령: 성령 안에서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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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15:40 ㅣ No.6450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성령] 성령 안에서의 기도

 

 

성령께 드리는 교회의 기도는 이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오소서, 성령님! 그런데 이 기도를 잘 살펴보면 성부와 성자께 드리는 기도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께는 ‘대화’의 형태로 기도를 드립니다. 성부와 성자께서는 기도 안에서 우리의 맞은편에 계십니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와 우정을 나눌 때 그 사람이 나의 맞은편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께 교회는 이런 대화와 만남의 형태보다는 간결한 외침인 ‘오소서’로서 기도합니다. 이 ‘오소서’라는 외침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을 성부와 성자를 연결하는 ‘사랑의 연결’이라고 불렀습니다. 성부와 성자는 서로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의 열매는 성령이십니다. 그리고 많은 동방교부들은 성부와 성자께서 성령 안에서 ‘쉬시며 일치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일치는 사랑이신 성령 안에서 드러납니다. 성령이란 이름조차 성부와 성자의 일치를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거룩함’과 ‘영’이라는 것, 즉 성령이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는 성부와 성자에게도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성부도 거룩하시고 또 영이시며 성자도 그러하십니다. 성령은 이렇게 성부와 성자에게 속하신 분, 그분들의 사랑의 연결로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성자의 말씀만을 깨닫게 하고 전달해 준다고’(요한 16,13-14)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성자처럼 인간이 되시지도 않으셨고 불, 물, 구름, 비둘기처럼 인격을 지니지 않은 존재로만 나타나셨습니다. 여기서 얼굴도, 자신의 목소리도 드러내지 않으시는 성령의 위대한 자기비움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사랑이신 성령은 이처럼 자신을 감추시며 서로 다른 이들을 하나로 만드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신비는 기도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 내면 안에 주어지신 성령은 우리를 억압하고 강제로 조종하는 폭군으로 행동하시지 않고 조용한 미풍처럼 우리 내면 깊숙이에서 활동하십니다. 성령론의 대가인 이브 콩가르 추기경은 그래서 “성령은 내면 깊숙이 마음안에 영적으로 친밀하게 주어지기에 우리와 그분의 활동을 구별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성령은 우리 내면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우리가 오히려 성자와 ‘사랑으로 연결’되게 하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얼굴을 지니지 않지만, 성령의 은총으로 성자를 닮아 아름답게 된 모든 인간의 얼굴들이 그분을 드러냅니다. 그분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감추시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우리 내면에서 가르치시고 열정과 용기를 불어넣으십니다.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서 성령께서는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로, 그분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그분과 하나 되도록 이끌어주십니다.

 

기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어떻게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를 위해’(로마 8,26)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올바로 기도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혼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스스로를 감추시며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나’ 홀로 기도하지 않고 성령과 ‘내’가 함께, 즉 ‘우리(성령과 나)’가 하나로 일치하여 기도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자신을 감추시며 내면에서 사랑과 믿음을 불어넣으시며 우리가 힘차게 성자와 성부께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기도에서 우리 맞은편에 계시지 않고 ‘우리와 일치’하여 우리가 맞은편에 계신 성자와 성부와 만나고 일치하도록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성령의 활동을 의식하지 않고 그 활동에 스스로를 내맡기지 않을 때 성령은 우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조용한 미풍으로만 머무십니다. 그럴 때 우리가 바로 ‘오소서! 성령님!’을 외치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 외부에서 오시기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우리 내면에 계신 그분을 부르며 우리 자신을 성령의 움직임에 ‘내어 맡기는’ 외침입니다. 오소서!라는 이 외침은 그러므로 “당신께 나를 내어드립니다. 저는 기도할 줄 모릅니다. 저를 이끄소서! 저와 일치하여 예수 그리스도께로 저를 인도해 주소서!”라는 외침. 즉, 성령에 스스로를 내어맡기는 신뢰의 외침입니다.

 

[2025년 11월 23일(다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전주주보 숲정이 3면, 하성훈 요셉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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