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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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교본 다시 읽기: 파라클레토스 성령 안에서 우리의 위로자요 변호자이신 성모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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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2-03 ㅣ No.995

[교본 다시 읽기] 파라클레토스 성령 안에서 우리의 위로자요 변호자이신 성모 마리아

 

 

우리는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의 ‘위로자’시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레지오 마리애 기도문에는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이란 문구가 있다. 흔히 모임과 기도(특히 성무일도 끝기도)를 마치고서 바치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성모 찬송가 ‘살베 레지나’(Salve Regina)의 가사 중에는 성모 마리아를 가리켜 “우리들의 변호자”(advocata nostra)라고 하는 표현이 나온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교회 헌장」 제8장 62항은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교회 안에서 변호자,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라는 칭호로 불리신다.” 하고 설명한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우리는 고된 삶의 시련과 역경, 그 고통의 심연 속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 마리아에게 탄원을 드렸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병들고 지쳤을 때, 가난과 파산 속에서, 그리고 극심한 가정불화 속에서, 혹은 미움과 증오의 인간관계 속에서, 때로는 죄악의 나락에서 그래도 우리는 마지막 희망으로 우리들의 보호자이시고 위로자이시며 변호자이신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하는 묵주의 기도를 바친다.

 

그런데 이러한 호칭들의 사용을 위해서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교회 헌장」은 이를 다음과 같이 강조해 설명한다. 

 

우리들의 보호자, 중개자, 인도자, 위로자, 변호자로서 성모 마리아의 역할은 “종속적인 임무”이며, “이것은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존엄과 능력에서 아무것도 빼지 않고 아무것도 보태지 않는다고 이해되어야 한다.”(62항)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의 보호자, 중개자이시며 또한 위로자, 변호자가 되심은 삼위일체 하느님과 동떨어진 독자적 역할을 가리키지 않고, 오로지 삼위일체 하느님의 존엄과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종속된다는 의미에서이다.

 

보호자, 협조자, 중개자, 인도자, 위로자, 변호자 등의 표현은 신학적 의미에서 성령을 가리키는 단어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신약성경 요한복음서에서 사용되는 매우 특별한 단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단어를 당신 자신을 향해서, 그리고 이제 결정적으로 성령을 가리켜 사용하신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파라클레토스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요한 14,16-17)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파라클레토스,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요한 15,26)

 

‘파라클레토스’는 과거의 공동번역 성경에서 ‘협조자’(helper)라 번역되었고, 현재의 새 성경에서는 ‘보호자’(guardian/protector)로 번역된다. 어원적으로 보면, 이 단어는 ‘불리어져서 옆에 와 함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스스로 힘만으로는 무엇을 하기 어려운 병자와 노약자 및 어린이 등이 도움을 요청하면 곧바로 달려와 옆에서 도움을 주는 이가 바로 ‘파라클레토스’인 것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인도자(guide)나 중개자(intercessor), 그리고 변호자(counselor)나 옹호자/지지자(advocate), 혹은 위로자(comforter/consoler) 등의 다의적(多義的)이고 광의적 의미를 함축한다.

 

 

파라클레토스, 하느님이시며 가장 아름다운 하느님의 선물

 

이처럼 이미 헬레니즘의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단어 ‘파라클레토스’는 이제 요한복음서를 통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가리키는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 단어는 성령께서 행하시는 여러 역할을 가리키는 관점에서 오직 성령을 지칭하게 된다. 

 

이 파라클레토스 성령은 사랑 자체인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선사하시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은총이다. 파라클레토스 성령께서는 그 본질이 하느님 자체이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몸소 다가오시는 고귀한 사랑의 선물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어두운 밤길을 가더라도 파라클레토스 성령께서 인도하신다는 믿음으로 용기를 낸다. 지금 나는 시련의 가시밭길을 가더라도 파라클레토스 성령께서 나를 이끌어주신다는 믿음으로 위로를 받는다. 비록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이 오해받고 누명을 쓰게 되더라도, 파라클레토스 성령께서 나를 위해 변호해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한다. 진리의 영이신 그분께서는 언젠가 모든 진실을 밝혀주시고 정의를 세워 주실 것이다. 때가 되면 그분의 신비로운 작용으로 나에 관한 오해도 풀릴 것이며, 누명도 자연스럽게 벗겨질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와 겸손이다.

 

마리아는 성령으로 인한 동정 잉태와 관련하여 당시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오해를 받았을 것인가? 우리는 성령에 의한 마리아의 동정 잉태를 생물학적 차원에 국한해서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동정 잉태를 가능하게 하신 분도 성령이시며, 그 순간부터 마리아가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오해와 위협 속에서 변호자로서 마리아를 위로하고 격려하신 분도 또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이후 수많은 인간적 고통 속에서, 그리고 마침내 외아들의 십자가상 죽음이라는, 한 여인이자 어머니로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의 가장 깊은 심연을 체험한 후 성령 강림을 통해 새로이 탄생하는 교회의 증인이자 모범이 되기까지, 마리아를 인도하신 분도 파라클레토스 성령이시다.

 

그렇게 파라클레토스 성령을 깊이 체험한 성모 마리아 역시 우리에게 보호자요 위로자로서 다가오신다. 더욱이 성모 마리아께서는 우리에 앞서 먼저 그 고통의 길을 걸어갔기에 우리 생애 고난의 여정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삼위일체 하느님께 우리를 대신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신다.

 

성령의 깊은 위로를 체험한 이를 통해서 그 신적(神的)인 위로가 널리 퍼져나가는 것이 파라클레토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방식이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이가 치유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 상처를 투사(投射)해 전달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듯 옮겨지는 마음의 깊은 상처는 마치 영혼의 전염병과도 같다. 반대로,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사랑을 전달한다. 깊은 위로를 받았던 이는 진정한 위로가 어떻게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지를 잘 알 것이다. 

 

이처럼, 마리아의 삶에 함께하셨던 파라클레토스 성령의 보호와 인도와 위로는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마리아를 통해서 전달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모 마리아는 우리의 보호자이시고 위로자이시며 변호자가 되신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흠숭하고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신앙인은 파라클레토스 성령의 신비로운 위로와 도움을 깊이 체험할 것이며, 그렇게 자신이 체험한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또 하나의 파라클레토스가 될 것이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1월호,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서울 무염시태 Se. 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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