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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성당 스케치48: 피렌체의 르네상스 성당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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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48) 피렌체의 르네상스 성당들 고딕에서 매너리즘까지…시간 응축된 르네상스 건축 발원지
한 해 동안 르네상스 시대에 세워진 성당들을 시기별로 지상(紙上) 순례하면서 건축 양식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의 도전과 혁신으로 ‘피렌체’에서 태어난 르네상스 건축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의 지성과 수고 덕분에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들로 전파되었습니다.
한 세대 후 밀라노에서 활동하던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 1444~1514)가 로마에 정착하여 교황청 안에 건축 공방을 설립하고 건축가들을 양성하면서, 르네상스 건축의 중심은 ‘로마’로 옮겨졌고, 르네상스 양식은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본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야경. 14세기 초 고딕 양식으로 설계된 두오모는 건축술의 부족으로 15세기 중반에 가서야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돔이 올려졌다. 그래서 이 돔은 어둠 속에 빛나는 피렌체 르네상스의 상징이 됐다. 강한수 신부 제공
르네상스 건축을 이렇게 시간적 흐름에 따라 살펴보았는데, 이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적 머무름에 따라 르네상스 성당들을 다시 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가보고 싶은 도시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입니다. 피렌체에서 첫 번째로 발걸음을 붙잡는 곳은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의 <청동 다윗상>이 있는 바르젤로 미술관(Museo Nazionale del Bargello)입니다.
그곳에는 르네상스의 영감을 준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중세에 살았지만, 그들의 문학과 미술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리나시타(Rinascita)’의 발판이 되어준 시대를 앞서간 거장들입니다.
-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중세의 고딕양식으로 설계됐다. 강한수 신부 제공
건축에서도 중세의 마지막 작품들을 남겨준 대가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 1245~1310)의 업적에 경의를 표합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과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은 고딕이라는 중세의 방식으로 설계되어 세워졌고, 피렌체의 주교좌성당인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은 아르놀포의 역작입니다.
고딕 양식의 이 세 성당은 르네상스가 중세로부터 이어받은 굉장한 유산입니다. 이후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알베르티에 의해서 로마 고전주의를 따라 르네상스 양식의 파사드를 갖게 되었고, 브루넬레스키가 개발한 원근법을 최초로 적용한 마사초(Masaccio 1401~1428)의 <성 삼위일체> 프레스코화를 그 안에 담았습니다. 산타 크로체 성당 역시 단테를 기억하는 기념비와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무덤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는 단테를 기억하는 기념비와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무덤을 보존하고 있다. 강한수 신부 제공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고딕으로 지어진 성당은 르네상스 건축의 상징인 붉은 돔을 브루넬레스키로부터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의 돔이 르네상스의 상징이 된 것은, 불가능했던 돔 설계의 실마리를 브루넬레스키가 고대 로마의 유적에서 특히 판테온으로부터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로마 고전주의는 르네상스의 키워드였고, 피렌체 사람들은 백여 년 만에 우산 없이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피렌체 두오모를 빠져나오면 역시 브루넬레스키의 손으로 지어진 산 로렌초 성당(Basilica di San Lorenzo)이 순례의 걸음을 재촉합니다. 바실리카형의 라틴 크로스 평면을 가진 이 성당은 중세의 선형 평면이 르네상스의 중앙집중형 평면으로 변화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성당에는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구(舊) 성구실(Sagrestia Vecchia)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당 옆으로 메디치가의 궁전인 팔라초 메디치(Palazzo Medici Riccardi)가 있는데, 이곳의 동방박사들의 경당(Cappella dei Magi)에는 유명한 <동방박사들의 행렬> 프레스코화가 있습니다.
- 산 로렌초 성당은 바실리카형의 라틴 크로스 평면을 갖고 있어, 중세의 선형 평면이 르네상스의 중앙집중형 평면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강한수 신부 제공
같은 장소에서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브루넬레스키 이후 백 년 동안 마감 공사를 못하고 지내온 산 로렌초 성당은 미켈란젤로의 멋진 파사드를 가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석재의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파사드 공사는 무산되었습니다. 대신에 미켈란젤로는 산 로렌초 성당의 구 성구실 반대 편에 신(新) 성구실(Sagrestia Nuova)을 설계하였고, 이어서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작품인 라우렌치아나 도서관(Biblioteca Medicea Laurenziana)을 설계하였습니다.
이 두 작품에서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의 고전주의를 넘어서 매너리즘의 면모를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미켈란젤로가 젊은 시절에 조각한 <다윗상>이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도 놓칠 수 없는 곳입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 인문주의를 펼친 피렌체의 국부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가 비용을 부담하여 지은 산 마르코 성당(Basilica di San Marco)이 있고, 이곳에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의 <수태고지> 등 다수의 프레스코화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내려오면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고아원(Ospedale degli Innocenti)에서 발길이 멈춰집니다. 세계 최초의 고아 보육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건물은 아케이드를 원형 기둥이 받치는 로마네스크를 기반으로 한 고전적 중세의 모습을 파사드의 로지아에서 볼 수 있는데, 산 로렌초 성당의 네이브월 아케이드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조금 멀리 시내를 가로질러 아르노강을 건너면 브루넬레스키의 마지막 작품인 산토 스피리토 성당(Basilica di Santo Spirito)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성당에서 선형 공간 안에 중앙집중형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르네상스 건축이 중앙집중형의 평면으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산토 스피리토 성당에서 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 Carmine)이 있습니다. 그 성당의 브란카치 경당(Cappella Brancacci)에는 르네상스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마사초의 <아담과 하와의 추방(Cacciata di Adamo e Eva)>과 <사도좌에 앉은 베드로(San Pietro in cattedra)>를 볼 수 있는데, 후자에서 마사초와 알베르티 그리고 브루넬레스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의 브란카치경당에는 르네상스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마사초의 <사도좌에 앉은 베드로>가 걸려 있다. 강한수 신부 제공
피렌체의 좁고 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골목을 걷다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성당과 팔라초들의 다른 듯 같은 어우러짐에 푹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건물들 안의 아름다운 미술품들은 순례자들을 자신 앞에 멈춰 세워놓고 지친 발을 쉬게 해 줍니다.
그런 팔라초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d architettori)을 저술한 화가이자 건축가이면서 근대 최초의 미술사학자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가 설계한 팔라초 우피치(Palazzo Uffizi, 현재 우피치 미술관)입니다. 세상의 어느 미술관도 이보다 더 보석처럼 빛나는 작품들을 한데 모아 놓지는 못할 것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인문주의와 로마 고전주의에 대한 열정은 르네상스의 꽃이 활짝 피도록 해 주었습니다.
이제 우피치 미술관을 나와서 아르노강을 향하면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를 만납니다. 그 시대의 모든 사건을 기억하고 있건만 아무 말도 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을 따라가다가 언덕을 향해 오르면 미켈란젤로 광장이 나오고, 그곳에서 조금 더 오르면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성당(Basilica di San Miniato al Monte)을 만납니다.
토스카나 로마네스크의 정수이자 수많은 르네상스 성당의 파사드에 영감을 준 이곳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놓은 피렌체의 야경이 펼쳐집니다. 아마도 누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 풍경일 것입니다. 사람이 하느님 보시라고 만든, 하느님께 드리는 작은 봉헌입니다.
[가톨릭신문, 2025년 12월 14일,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 0 5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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