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ㅣ세계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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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홍콩 천주교회의 현지화와 보편화: 화남신학교와 성신신학교의 건립과 역할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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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천주교회의 현지화와 보편화 - 화남신학교(華南總修院)와 성신신학교(聖神修院)의 건립과 역할을 중심으로 -* Ⅰ. 머리말 Ⅱ. 홍콩 가톨릭 신학교의 시작과 신학생 양성 Ⅲ. 화남신학교의 현지화 특징 Ⅳ.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현지화와 홍콩교구 신학교의 보편화 Ⅴ. 맺음말 <국문초록>
서양 선교사들이 건립한 가톨릭 교회가 현지화되기 위해서는 현지 토착민들의 성소를 육성하는 신학교 건립이 필수적이었다. 홍콩에도 가톨릭교회가 세워진 19세 중반부터 현지인 양성을 위한 초보적인 신학교가 운영되었으나 체계적인 신학교는 20세기에 들어 마련되었다. 중국의 첫 교황사절이 1931년 설립한 ‘화남신학교(華南總修院)’와 1964년 홍콩 교구가 건립한 ‘성신신학교(聖神修院)’이다. 화남신학교는 광동(廣東)과 광서(廣西) 교구의 사제 양성을 위해 설립되었으나, 1950년대에는 중국내 각 교구를 대상으로 한 중요한 신학교로 발전하여 많은 사제들을 양성했다. 홍콩교구가 화남신학교를 인수받아 새로 건립한 성신신학교는 현재 홍콩 가톨릭교구의 사제와 평신도를 위한 신학과 사목 교육을 제공하는 핵심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글은 신학교가 발간한 자료집과 관련 연구자료를 기반으로, 홍콩에서 현지 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교가 어떤 배경과 과정을 거쳐 설립되었고, 홍콩 천주교 현지화 과정에 어떤 역할을 했으며 현재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먼저 화남신학교가 홍콩에 건립된 후 신학생 양성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특히 화남신학교 건물이 중국과 서양 양식이 융합된 최초의 가톨릭 건물로 지어지게 된 이유와 교회 현지화에 미친 영향, 그리고 대륙의 공산화로 인해 많은 신학생들이 몰려와 1950년대 중국 전역의 신학생 교육을 담당하게 된 화남신학교의 신학교 생활과 사제양성 교육은 어떠했는지 알아보았다.
다음으로, 1964년 화남신학교의 폐교와 홍콩교구의 성신신학교 건립과정에 대해, 그리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현지화 지침 이후, 홍콩교구 성령신학교의 사제양성은 어떻게 변하였고 신학교는 어떤 발전이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성령신학교는 교회 현지화뿐 아니라 영성·사목·규모 면에서도 발전하였다. 성신신학교는 평신도에게도 신학교육을 개방하였고, 교회와 함께 실천적인 현지화를 이루어내었다.
홍콩 가톨릭교회와 성신신학교는 중국 정부가 배척하는 서구 교회가 아니라 현지화된 보편교회로 존재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의 교회 중국화 정책은 홍콩 가톨릭교회가 중국 전통과 상호보완적인 융합하며 추진해온 교회 현지화와 상충되고 모순된다. 교회 현지화는 더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문화에 적응하며 보편성을 지니지만, 교회 중국화 정책은 교회를 중국 사회제도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현재 홍콩교구와 신학교는 중국정부가 강요하는 교회 중국화 정책의 압박을 받고 있다. 홍콩의 신학교는 교리와 신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뿐 아니라, 홍콩 ‘현실’에서 현지화된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훈련과 신앙생활을 고양하는 실천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홍콩에 성신신학교의 존재와 역할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 이 논문은 2023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공동연구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3S1A5A2A03084151)
[학술지 교회사학 제27호, 2025년(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김정현(가천대학교 강사)] 파일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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