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8일 (목)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2: 주어사 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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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1-05 ㅣ No.1970

[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2) 주어사 강학


서학을 통해 조선 현자들에게 ‘공현’하신 주님

 

 

- 권철신과 그의 제자들로 구성된 녹암계 현자들은 1779년 겨울 주어사에서 열흘간 가톨릭 교리를 연구한 후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사진은 주어사 터.

 

 

2026년 1월 4일은 전례력으로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새 「성경」에 ‘동방 박사’라고 번역된 ‘마고이’ 곧 ‘현자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찾아온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교회는 이날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민족에게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 드러나셨다고 해서 ‘주님 공현(公現)’이란 표현으로 경축한다. 신약 성경의 언어인 헬라어로는 ‘ἐπιφάνεια(에피파네이아)’라고 한다. 우리말로 ‘스스로 드러내심’이라는 뜻이다.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께서는 별의 인도로 찾아온 동방 박사들 곧 현자들을 통해 당신을 스스로 드러냈듯이, 우리 민족에게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공현’했다. 바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의 인도로 ‘서학’(西學)을 탐독하던 현자들을 통해 구세주의 실존을 드러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황금과 유향, 몰약을 바쳤다. 이 선물들은 그리스도의 ‘왕권’과 ‘신성’, 그리고 ‘인류를 위한 희생’을 상징한다. 하지만 글을 통해 아직 희미하게 구세주의 존재를 인식했던 우리의 현자들에게는 구세주 아기 예수의 신비를 상징하는 예물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 ‘그리움’, ‘고통’ 등을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합당한 자세, 마음가짐이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현자들은 서학에 담겨 있는 글 안에서 참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났고, 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자 구세주로 경배할 수 있었다. 이에 동방 박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최초의 이방인’으로 복음서에 등장하듯이, 서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현자들 가운데 세례를 받은 이들은 ‘우리 민족의 첫 세대 그리스도인들’로 한국 천주교회사 안에 기록되고 있다.

 

 

교회의 동아시아 선교와 한역서학서 출간

 

우리 민족이 한순간 갑자기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성경 시대에 구약과 신약이 하나로 연결되는 ‘중간 시기’가 있었듯이, 조선 후기 유학자들이 서학을 수용해 신앙으로 승화하기까지 궤적을 보여주는 사상사적 ‘수용 시기’가 분명 있었다.

 

서학의 조선 전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가톨릭교회의 동아시아 선교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에 대응해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 교황들은 유럽 밖의 복음화 정책을 시행했다. 가장 큰 결실이 바로 ‘포교성성’(현 교황청 복음화부) 설립이다. 교황청 포교성성은 선교 지역에 교구와 대목구를 증설했고, 서구 중심의 선교 정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톨릭 신앙에 어긋나지 않는 한 현지인들의 관습에 순응해 ‘토착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과 중국에 진출한 예수회와 도미니코회 등 여러 수도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조선 선교를 계획했으나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조선의 쇄국 정책 때문이었다. 조선 후기 서양 문물과 또 서양 선교사들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해마다 부연사(赴燕使) 일행을 따라 북경에 가서 천주당을 방문하거나 북경 선무문 밖 유리창 상가에서 서양 물건과 한역서학서를 사오는 것이었다.

 

‘한역서학서’는 16세기 말 이래로 중국에서 활동한 서양 선교사들이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고 서양 문물을 전달하기 위하여 가톨릭 교리와 윤리·지리·천문·역사·수학·과학·기술 등을 한문으로 저술 또는 번역한 일체의 서적을 말한다. 한역서학서는 주로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출간됐다. 16세기 말에서 18세기 말까지 출간된 한역서학서는 400종이 넘는데 그중 가톨릭 서적은 「천주실의」「칠극」「교우론」「기인십편」「직방외기」「성경직해」「성체요리」「천주교리」 등이 유명했다.

 

 

조선 학자들이 서학을 대한 태도

 

한역서학서를 비롯한 서양 문물이 조선에 소개된 것은 17세기 초부터였다. 이후 18세기에 들어 ‘서학’은 학문으로서 본격적인 연구 대상으로 수용됐다. 서학에 대한 조선 학자들의 태도는 세 갈래로 드러났다.

 

첫째, 서양 학문과 기술, 가톨릭 신앙 모두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며 전문을 수용하고 실천한 ‘신서파’(信西派)이다. 이들은 주로 남인계 소장 학자들로 하느님의 종 녹암 권철신(암브로시오, 1754~1785)와 그 문하생들이었다.

 

둘째, 서양의 과학 기술은 받아들이나 종교와 윤리는 배격하는 ‘비판적 수용론자들’이다. 이들의 주류는 북학파 계열의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이었다.

 

셋째, 가톨릭 신앙뿐 아니라 서학 자체를 거부하고 배격하는 ‘공서파’(攻西派)이다. 척사론(斥邪論)을 내세운 안정복, 신후담, 홍정하 등이 주류였다.

 

 

‘주어사 강학회’에서 가톨릭 신앙을 수용하다

 

신서파는 주로 성호학파 가운데서도 좌파로 알려진 양명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명나라 왕양명이 주자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새로이 수립한 양명학을 수용했다. 경기도 양근 지역 권철신의 문하에서 양명학을 공부하던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이벽(요한 세례자), 정약전, 정약용(요한 사도), 이승훈(베드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윤유일(바오로), 홍낙민(루카), 이총억, 김원성, 권상학 등 녹암계가 이들이다.

 

1779년 겨울, 권철신 주도로 열린 ‘주어사 강학회’에서 녹암계 현자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열흘간 밤을 새우다시피 한역서학서를 함께 읽고 가톨릭 교리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인 후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ἐπιφάνεια(에피파네이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글을 통해 이들에게 스스로 드러내셨다. 그래서 일부 한국천주교회사 학자들은 권철신의 집이 있는 양근 한감개와 강학회가 있었던 주어사를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이라고 평한다. 조선의 현자들이 처음으로 구세주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주님께서 이들에게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신 곳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1월 4일, 리길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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