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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샘: 불행 중 다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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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불행 중 다행”
살면서 우리는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입에 담아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누구는 그 말을 매일 입에 달고 살지도 모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불행 중 다행’이라는 표현은 뭔가 긍정적이고 신앙인다운 표현이라고도 느껴집니다. 여러모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것을 기어이 찾아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불행으로 여겨지는 무수히 많은 일들 가운데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 무엇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런 의미로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 ‘다행 중 불행’이라는 말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흔히 사용하지는 않는 표현입니다. 입에 자주 올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 마음은 ‘다행 중 불행’이라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것만 같습니다. 다행스러운 일들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한 번의 불행에 너무나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 한 번의 불행이 아홉 번의 다행을 모조리 삼켜 버립니다. 그래서 감사드릴 일들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다행 중 불행’에만 발목이 잡혀서 허우적댑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불행의 연속 같은 삶을 살더라도 다행스러운 일에 주목하고 집중하여 감사의 열매를 맺곤 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안쓰러울 만큼 고되고 아픈 일들의 연속이지만, 자기 스스로는 ‘불행 중 다행’을 외치며 다행스러운 일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한 번의 다행이 아홉 번의 불행을 밀어내고도 남습니다. 그 한 번의 다행으로도 충분히 하느님께 감사하며 역경과 시련의 연속을 기어이 기쁘게 살아냅니다.
2월의 전례력 중에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날은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우리는 이날 성전에 봉헌되신 아기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바라봅니다. 그 봉헌의 순간에 성전으로 나와서 나자렛 성가정과 함께하고 있는 두 노인을 바라봅니다. 과연 그들에게는 어떤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요? 적어도 그들에게는 ‘다행 중 불행’이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행이었을 것 같습니다.
마리아의 경우, 어린 나이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잉태를 순명으로 응답한 그 순간에도... 어렵사리 마구간에서 출산할 때도... 남편과 함께 이집트로 피난을 갈 때도... 돌아와서 나자렛에 정착하고 살아갈 때도... 마리아는 모든 순간을 다행으로 여겼을 것 같습니다.
요셉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결혼 전에 잉태한 아내에 대한 실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을 때도... 마음을 바꿔 혼인을 하고 아내와 아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도...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려 노심초사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옮길 때도... 요셉도 결국 그 모든 순간을 다행으로 여겼을 것 같습니다.
시메온과 한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들의 험난한 인생 여정 안에서도... 그들이 그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을 성전에 나와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던 때도... 우연한 기회에 만난 한 가정의 모습을 통해 구원의 시작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도... 시메온과 한나는 모든 순간을 다행으로 여기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을 것입니다.
긍정과 신앙의 눈으로 ‘다행’을 찾아내려 했나 성찰해야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앙’입니다. 참된 신앙으로 채워진 올바른 신앙인으로서의 태도입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기 이전에 먼저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자녀로 태어나 어엿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오면서, 레지오 마리애를 만나 그 활동을 통해 신앙을 이어온 단원으로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불행 중 다행’을 외쳐 왔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이 다행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긍정과 신앙의 눈으로 다행을 찾아내려는 태도를 지녀 왔는가 성찰해 봅니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은 ‘다행 중 불행’에 갇혀 버려서 침체된 레지오 단원, 씁쓸한 신앙인, 괴로운 하느님의 자녀로만 머물러 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우리는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외치기 전에 이미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힘입어 신앙의 여정을 살아가고, 다양한 사도직을 수행하며, 특별히 레지오 마리애를 통해 자신을 성화하고 공동체를 성화하는 우리의 사명을 생각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어울리는 것은 ‘다행 중 불행’이 아닌 ‘불행 중 다행’을 자주 읊조리는 태도일 것입니다.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잘 알아채고 거기에 감사하며, 그 힘으로 다른 모든 것들을 견디고 이겨내며 살아낼 줄 아는, 좋으신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행복한 자녀... 올바른 신앙인... 담대한 레지오 단원으로 기쁘고 당당하게 이 신앙의 여정을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2월호, 박규성 미카엘 신부(청주교구 선교사목국장, 청주 Re. 담당사제)] 0 16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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