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3일 (월)
(백)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영원한 스타 안성기 요한, 별이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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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4-07 ㅣ No.1008

[허영엽 신부의 ‘나눔’] 영원한 스타 안성기 요한, 별이 지다

 

 

새로 맞은 한 해의 희망을 그리며 덕담과 안부를 주고받던 연초의 어느 날 배우 안성기 사도요한 님의 부음을 듣게 됐다. 나는 그때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지만 일행에게 양해를 구한 뒤 부인인 요안나 자매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제님은 몇 해째 건강이 좋지 않으셨고, 지난 연말에 위급한 상황으로 응급실을 거처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셨기에 쾌차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선종 소식을 듣자 정신이 멍해지고 가슴이 아팠다. “자매님 얼마나 황망하세요?”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막상 이 한마디를 건네고 나니 목이 메어 더는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미사 중에 기억할게요.”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염수정 추기경님께 이 소식을 알렸다. 염 추기경님은 교황청 추기경 회의 참석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 중이셨는데,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 유족들에게 안부를 정중하게 전해주고 당신을 대리해서 할 일을 알려주셨다. 통화를 마치고 다시 돌아와서 모임을 계속했지만 좌불안석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잠시 후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이신 로마의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님이 유족에게 전해달라시면서 애도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두 분 추기경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사도요한 형제의 평소 삶에 대해서 묵상하게 되었다.

 

안성기 형제와 알고 지낸 지 30년이 넘었는데 생각해보면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었지만, 신기하게도 만날 때마다 마치 며칠 전에 보고 또 만난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겸손함과 온유함이 늘 한결같은 분이셨다. 나는 교구에서 홍보 업무를 오래 하면서 문화예술인들도 많이 만났는데, 조금만 인기를 얻어도 태도가 바뀌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런 인성을 지닌 사람들은 활동을 오래 이어 나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이지만 능력과 성과만큼이나 그 사람의 인성이 그 분야에서 오래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요소인 것 같다.

 

 

겸손함과 온유함이 늘 한결같은 분

 

장례 기간 내내 많은 이들이 안성기 사도요한 형제의 선종을 안타까워했다. 마치 이웃집 형님처럼, 친구처럼 우리와 함께 웃고 슬퍼하고 또 희망을 찾았던 따뜻한 이웃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는 모든 이가 사랑하는 국민배우였고, 겸손하고 무엇보다 인성이 좋은 참다운 스타 중의 스타였다. 고 정진석 추기경으로부터 “안성기 배우는 참 고마운 사람이야”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2005년 정 추기경은 당시 세상을 희망에 부풀게 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실제로는 인간 생명의 존엄을 파괴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심각하게 우려하며 대안으로 성체줄기세포를 연구하도록 주장했다. 하지만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생명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정 추기경님은 국내외에서 엄청난 공격과 곤욕,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됐다. 

 

정 추기경은 훼손될 위기에 처한 생명의 가치를 지켜야 했기에 교회의 조직을 총동원했다. 교구에 생명위원회를 발족하고 성체줄기세포 연구 지원과 생명 수호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가기로 한 것이다. 이때 안성기 형제는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생명 홍보대사’직을 기꺼이 수락했다. 당시 배우 김해숙(비비안나), 가수 이소은(마리아), 아나운서 강수정(마리아) 등 가톨릭 신자 문화예술인들이 생명 홍보대사로 나섰는데 정 추기경은 그 고마움을 여러 차례 이야기하셨었다. 

 

안성기 형제는 아역배우로도 인기가 많았다. 내가 “아역배우들이 성인 배우로 계속 연결되어 활동하기 어려운데 나이가 들어서도 성공한 비결이 뭐냐?” 물었던 적이 있다. 그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5살 때 아버지가 일하시는 촬영장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아역배우를 하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잘한다고 칭찬해주니 우쭐해서 계속 연기를 했지요. 그런데 중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사춘기를 보내면서 방황을 많이 했어요. 대학 졸업 후 군대 제대 이후 잠깐 회사생활을 했는데 적응을 잘못했어요. 연기에 대한 꿈을 못 버렸던 거죠. 운 좋게도 당시 좋은 감독님들을 만났어요. 최고의 작가인 최인호 베드로 형님도 만나게 되었고요. 다시 영화에 나왔을 때 저를 신인으로 아는 사람도 많았어요. SNS가 발달한 지금 시대 같았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라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주연 배우를 하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연에 캐스팅되면서는 고민이 많았어요. 당시만 해도 영화는 주로 주연만 부각되는 면이 많았지요. 그런데 ‘나는 스타가 아니라 연기자다’라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용기가 생겼지요.” 평생 영화를 사랑했던 안성기 배우는 후배들, 특히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을 많이 격려하고 조언했다고 한다. 촬영 틈틈이 그들의 말을 들어주면서 용기를 갖도록 조언과 도움을 주면서, 그때마다 스타가 되려 하지 말고 연기자가 되라고 했다는 것이다.

 

 

수줍고 한없이 착하고 온유한 인성의 안성기 사도요한

 

그의 장례식에 쓴 사진은 ‘기쁜 우리 젊은 날’ 영화 촬영 당시 찍은 사진이란다. 나도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가 ‘기쁜 우리 젊은 날’이다. 그 영화에 나오는 안성기는 스크린 밖 평소의 본인과 거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줍고 한없이 착하고 온유한 인성의 안성기 사도요한의 모습이 그대로 굴절 없이 나타난다. 

 

그는 아들에게 쓴 오래전 편지에서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은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라고 했다. 능력 있고 성공한 사람보다 먼저 착한 사람이 되라고 세상에 남은 모든 이에게 유언을 남긴 것으로 생각한다. ‘착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람이 하는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바르고 어질다는 뜻이다. 보통 누구에게 착하다고 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 곱고 어질고 선량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신앙적인 의미로는 착하다는 의미는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도 사용된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루카 8,15)

 

안성기 배우는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스타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에, 공인이기에,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수도자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오늘이 있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보다는 어머니의 매일 같은 기도 덕분이라고 겸손해했다.

 

그의 선한 미소를 기억하며, 하느님께서 사도요한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를, 영원한 빛을 비춰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3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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