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3일 (월)
(백)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레지오ㅣ성모신심

교본 다시 읽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묵상하는 마니피캇(레지오 마리애의 까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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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4-07 ㅣ No.1010

[교본 다시 읽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묵상하는 ‘마니피캇’(레지오 마리애의 까떼나)

 

 

인간이 ‘전인적’(whole) 존재라는 것은 육체적 한계성을 지닌 동시에 또한 영적 존재(spiritual being)임을 가리킨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그 구분은 가능하나 결코 분리할 수 없이 단일한 통합적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이며 거룩한 존재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인간은 곧 영적 존재이다. 

 

이처럼 인간은 초월적 차원을 지향함으로써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어 참된 자기의 모습을 찾아 나간다. 삶의 실패와 병고의 시련으로 인해 이 세상에서 그동안 추구했던 가치들이 무참히 그리고 부질없이 무너져나가는 체험을 할 때, 결국 우리는 궁극적인 초월적 의미를 찾아 나선다.

 

지상적 존재이며 또한 영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삶의 한계 상황에서의 체험과 그것을 뛰어넘는 초월적 의미 체험이 동시에 교차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사업의 실패와 경제적 위기, 시험의 낙방과 좌절, 병의 고통과 절망, 인간관계의 갈등과 분열 등 여러 가지 한계 체험을 한다. 하지만 매우 역설적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이러한 고통과 무력함의 한계 체험은 곧 의미 체험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인간은 시련과 병고로 인해 무력해진 한계 상황의 체험을 통해서, 그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의미 체험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 1905~1997) 박사는 이에 관해 감동적인 증언을 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게 체포되어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Auschwitz)와 다하우(Dachau) 등지의 유태인 강제수용소에서 3년(1942~1945)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프랭클 박사는 이 기간 절망스러운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정신요법을 창안하였다. 그는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를 통해 과거의 고통스러운 체험에 대하여, 그리고 그러한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을 살게 하는 ‘의미’에 관하여 생생하게 증언한다.

 

프랭클 박사가 아우슈비츠에 끌려갔을 때, 그와 함께 기차에 실려 끌려온 모든 사람이 친위대의 한 고급 장교 앞에 줄지어서 일종의 심판을 받는 것을 목격한다. 그 장교는 노동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그리고 병자나 일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왼쪽으로 분류하였다. 거기에 도착한 이들의 90퍼센트가 왼쪽으로 분류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목욕탕처럼 생긴 가스실로 끌려가 즉시 집단 학살을 당했다. 프랭클 박사는 다행히 노동 가능하다고 분류되어 살아남게 되지만, 곧바로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먹을 것도, 갈아입을 옷도, 씻을 물도 제대로 없는 극한 상태에서 인간 이하의 모욕적인 취급과 폭력을 당하면서 강추위 속의 중노동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옥과도 같은 강제수용소의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희망을 잃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서 죽는다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이유와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자기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적, 육체적 저항력이 점차로 약해졌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에서 조금만 자기관리를 소홀히 하여 병에 걸려 기침이 나오고 열이 나면, 또 동상에 걸려 걷지 못하게 되면 노동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결국 가스실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용소로 끌려오기 전에 미리 자신의 전 재산을 금괴로 바꾸어 스위스 은행 비밀금고에 숨겨두었던 부자들도 끝내 버티지 못하고 다 죽어갔다. 이처럼 인생의 절박하고 결정적인 순간에서 재물의 힘으로는 결코 인간을 살려내지 못함을 보면서, 프랭클 박사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을 생존하게끔 만드는 ‘삶의 의미’를 결국 발견하게 된다. 프랭클 박사를 버틸 수 있게 하고 생존하게끔 이끈 원동력은 바로 ‘사랑’과 ‘소명감’이었다. 

 

“애타게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 인간을 향해, 또는 채 끝내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을 느끼게 되면 그는 결코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어떠한 방식에도 참고 견딜 수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그는 사랑하는 자기 아내와 가족을 향한 책임감을 생각하면서 수용소의 어려운 고비들을 헤쳐 나간다. 이처럼 발견된 ‘삶의 의미’는 한 인간의 존재에 존엄성을 부여하는 근원적 힘으로 드러난다.

 

 

‘마니피캇’에 드러난 구원적 의미

 

이처럼 프랭클 박사가 제시한 사랑과 구원의 의미 체험을, 우리는 루카 복음서 1장 46~55절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the Canticle of Mary)를 통해 그리스도 신앙의 관점에서 새로이 성찰할 수 있다. 이는 레지오 마리애 기도문의 ‘까떼나’(catena)를 구성하고 있으며, 흔히 ‘마니피캇’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라틴어 가사 첫째 줄 “Magnificat anima mea Dominum(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의 첫 단어를 딴 제목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여기서 우리의 삶에서 일어난 매우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처지와 사건들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해석해 바라본 메시지를 전한다. 마리아는 이 찬미의 노래를 통해, 우리 삶의 모든 시련과 고통을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신앙의 눈으로 새로이 성찰하며, 현재의 한계를 넘어서는 구원적 의미를 예언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이란 한계 상황을 넘어서 이루어지는 근원적이며 초월적인 의미 체험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삶의 여러 제약과 고통을 체험하고 있는 이 시간 속에, 어쩌면 삶의 다른 한편에서는 영적 깨어남과 초월을 위한 씨앗 하나가 신앙 안에서 고요히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성화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3월호,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전 서울 Se. 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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