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 세례를 대하는 자세
오늘은 하느님의 일을 하겠다는 특별한 모습을 보이신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세례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는 세례를 무엇이라고 말하거나 설명하겠습니까?
성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드러나는 세례에 관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물에 몸을 담갔다가 일어나시면서 하느님의 일을 하겠다는 선언을 하늘로부터 받은 날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세례는 우리가 받거나 체험하는 세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세례는 교회의 정신에 따라서 물과 성령으로 하느님의 일을 실행하겠다는 정신에 내가 참여하는 일이라면,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가 받는 일과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는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드러나는 모습의 교회의 의도에 따라 사제가 우리의 이마에 물을 부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우리에게 교회의 의도를 따라 살도록 인도하는 일이지만,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이스라엘의 요르단 강에서 있었던 일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도를 담으신 일로 선포하고 보이신 일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영광과 축복에 참여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드리지만, 그 일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일에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자세가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다고 신앙에서는 가르치지만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이거나 믿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좋은 계획은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는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겠지만, 세상에서 매우 좋은 것이고 누구나 감탄할 만하다고 해도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좋은 의미는 없다는 뜻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에게 먼저 세대를 받은 사람들의 눈이 다음 다음 순간에는 예수님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서 부러운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 되지 않은 일에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기대하고 이루어야 할 일의 한계를 분명히 보았다는 뜻일 겁니다. 세례는 내가 먼저 주기 시작했는데 라든가, 하느님의 구원에 관한 소식은 내가 예수님보다 먼저 선포했다는 선구자로서 가질 법한 욕심은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쉬울 수도 없고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바르게 산다면 그 자세와 한계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신앙의 본보기를 드러내는 사람에게나 그렇지 못한 자세를 갖추어서 아직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나 공통적인 일입니다.
세례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영광에 참여하는 조건이 되고, 그 일의 시작입니다. 세례만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그 다음 순간에 우리의 삶에도 좋은 결실이 찾아오도록 애써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세례라는 일에 담으신 놀라운 결과에 관하여 우리가 질투하는 마음을 갖자는 뜻은 아닙니다. 올바른 것을 생각하여 올바르게 드러내고.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옳은 결과를 우리가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시작은 세례부터 특별한 모습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담으신 은총과 축복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