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내가 해야 하는 일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협동과 협조 그리고 마음의 일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누군가가 남에게서 들어야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우리는 보통 내가 하는 생각이나 삶의 힘을 크게 보고 다른 사람에게서 오는 힘이나 도움을 보잘것없게 보는 일에서 여러 가지 차이가 나는 삶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오늘이 포함된 한 주간은 사도바오로의 회심축일에 앞서서 천주교와 개신교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여러 종파들이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는 주간입니다. 사도바오로의 삶을 이야기합니다만, 처음부터 그리스도교가 갈라졌던 것은 아닙니다. 어찌 생각하면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에서 출발했고, 유대교에서 훌륭한 삶을 살았던 바오로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뛰어난 선구자요, 활동가로 살았음을 기억하고 우리도 그렇게 살 방법은 무엇이겠는지 찾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바오로 사도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 모습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면 좋겠습니다.세상의 그리스도교에는 여러 모양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역사대로 얘기하면, 유대교에서 출발한 가르침이 그리스도교로 발전했고, 훗날 그리이스 정교가 갈라지는 아픔과 더 시간이 지나서는 개신교가 분리되어 나가는 모양이 됩니다. 물론 그보다 더 후대의 시기는 또 다른 여러 종파들이 등장했습니다만,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그런 다양한 종파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어찌하여 세상에서 갈라졌는지를 생각하고 일치하는 방법을 찾고 일치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는면 것입니다. 그렇게 삶을 돌아보는 오늘은 연중 제2주일입니다.오늘 들은 요한 복음이 전하는 내용은 사람들의 무리에 있었던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 알아보고 그분은 하느님의 구원을 전하는 분이라고 선언하는 내용입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훌륭한 모습을 미리 보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좋게 바라보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경쟁의 마음이 생겨나서 다른 사람을 나쁘게 보는 것이 기본적인 감정이 되었지만, 세례자 요한처럼 삶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대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좋은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구세주를 구세주로 알아보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은 아닙니다. 아무나 하는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축복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가능한 일입니다.세례자 요한에게 특별한 지혜가 다가왔다고 따로 전하는 말씀은 없습니다만,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라고 선언합니다. 세상에서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가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어떻게 알아보겠습니까? 우리라면 그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생각하겠습니까? 물론 세례자 요한은 그 사정을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올바르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그렇게 특별한 사람으로 선포된 예수님은 오늘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따르면 하느님의 뜻을 중심으로 살았던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같은 민족으로 살지 않아서 또는 같은 행동을 할 사람으로 살지 않아서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하는 내용을 들은 그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만 우리가 드러내는 삶의 자세는 분명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해야 하는 날,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이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 실현되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