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예수님을 구원자로 환호하기
오늘은 올해 사순시기의 여섯 번째 주일로 성지주일로 지냅니다. 성지주일까지 도착한 오늘을 지내면, 이제 올해 사순절의 시간은 한 주간이 남는 셈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우리는 다음 주일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노래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사순 제6주일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동쪽에 있던 베타니아에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의 성에 들어가신 입성 기념에 관한 일을 복음으로 들었고, 예수님께서 최후만찬을 세우시고, 올리브 동산에 가시어 기도하셨으며, 거기에서 성전의 경비병들에게 붙잡혔고, 사형선고와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내용도 마태오복음 사가가 전하는 수난기를 통해서 읽고 들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기념 복음과 수난기를 통해서 여러 가지로 일어난 일을 우리가 한꺼번에 들었습니다만, 사순 제6주일인 성지주일에 일어났을 일로 우리가 기억할 일은 예루살렘 입성기념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까지 움직이신 거리를 현실에서 셈하는 거리로 바꾸면, 3km의 거리가 채 되지 않는 생각보다는 짧은 거리라고 합니다. (=15스타디온의 거리, 185m*15스타디온=2.77km)
하지만 거리로 생각할 기준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루어졌을 수 많은 일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그 일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예수님을 구세주요 하느님의 일을 실현하는 놀라운 분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이것도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이루어진 일은 아니기에 그 사람들의 숫자나 그곳에서 사람들이 소리쳤을 내용을 우리가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놀라운 현장을 전한, 예루설렘 입성 기념의 복음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의 패거리는 분명히 갈라져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같은 현실을 두고도 사람들의 생각이 왜 갈라졌는지 그리고 왜 다른 길을 가야 했는지 현실의 우리가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같은 시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가 볼 줄 안다면 예수님에 관하여 서로 다른 생각을 드러냈던 사람들의 상황을 짐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예수님을 구세주라고 외치면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시는 일에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던 사람들과 한 주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자기들의 속에 숨겨 놓았던 검은 마음을 드러낸 사람들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구별하겠습니까?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된 일이었겠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사람으로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 월화수 3일간에 있을 법한 일은 우리가 무덤덤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만. 시간의 끝을 돌아보신 예수님께서는 목요일의 저녁시간에 성체성사를 세우셨고, 목요일의 밤중 시간부터 금요일에는 세상에서 하셔야 했을 일을 마치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십니다.우리의 삶에도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겠습니까?우리의 삶을 온전히 신앙을 중심으로 해석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삶에 일어나는 일을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차원에서 해석한다면 우리는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예루살렘 입성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살았던 현실이었지만,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자기들의 목소리를 드러낸 지도자들의 모습은 현실에서도 전쟁이라는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런 현실의 모습을 드러내는 현실의 이스라엘에게 과연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겠습니까? 미국과 이스라엘이 현실의 이란에게 패배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실천해야 할 하느님의 뜻을 성지주일에 잘 생각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