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대속의 죽음은 가능할까?
오늘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선포하시던 당신의 몸을 희생하신 날로 기억하는 성 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제국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손에 희생되셨습니다. 같은 일이지만 정치 권력자의 힘을 큰 것으로 보든지 아니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라고 강조하든지. 우리가 드러내는 자세에 따라서 의미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우리나라도 일본의 압제에 눌려서 힘든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만,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통치에 협력하던 사람들의 행동과 자기 민족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기만 높은 위치에서 살려고 했던 사람들의 행동으로 십자가에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비명횡사한 죽음을 우리는 신앙에서 다르게 해석합니다.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희생하신 일로 말입니다. 목요일의 최후만찬이 있은 다음, 올리브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던 예수님은 성전의 경비병들을 앞세운 카리옷 사람 유다의 배반과 협조로 예루살렘 성으로 붙잡혀 가셨고, 정치 지도자요 로마 황제의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판단과 결정으로 총독관저에서 사형선고가 내려졌으며, 아침 시간인 9시 경에 십자가형의 사형이 선고되었고, 낮 12시 경 골고타 산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오후 3시에 이르기까지 극도의 고통을 당하시다가 오후 3시를 기준으로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죽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태어난 생명은 반드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방향으로 갑니다. 그러나 보통의 죽음과 다르게 본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실현한 것이었고, 일부러 죽으려고 작정하신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에 사는 그 어떤 사람이 일부러 죽겠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실제로 그 길을 아무런 불만도 없이 가겠습니까?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죽음과 다르게 보아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죽음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옳다고 말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죽으신 일의 의미를 올바르게 대해야 우리도 세상의 삶에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하느님의 구원을 세상에 선포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만들 것입니다. 죽음의 의미를 쉽게 해석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예수님께서 보이신 죽음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신앙인으로서 우리도 세상의 삶에서 좋은 결과를 만드는 삶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예수님! 그 죽음을 기억하는 저희가 세상에서 올바르게 살아 하느님의 구원을 세상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좋은 결과를 만들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