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우리에게 부활은?
오늘은 밤 시간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축제일, 예수님의 부활대축일 전례를 거행하는 밤입니다. 세상의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부활이 어떤 일인지 그 모습을 알려주셨고, 그 부활을 가장 먼저 실현하신 분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사셨던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고, 내가 드러내는 삶이 특별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삶에도 부활은 실현될 가능한 일일까요?
이 질문을 들으면서 우리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대답할 수도 있지만, 부활은 실제로 우리의 삶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대답하는 모양에 따라 부활에 관해서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부활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부활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함께 하십니까? 물론, 부활이라고 말하는 놀라운 사건을 믿지 않는다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이 자리에 함께 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산다면 안타깝고 부끄러운 모습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부활이라는 표현을 들으면서 우리는 그 모습이 내 삶에 어떤 모양으로 실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아직은 세상의 삶을 마치지 않았거나 죽음이라는 놀라운 일을 만나지 않은 사람에게 부활이 어떤 모습이겠는지 묻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현실의 삶을 잘 산다는 일과 부활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부활을 해석하는 두 가지 일은 한 사람의 삶에 동시에 일어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대하면서 우리가 부활을 설명하는 일로 만나는 것은 실제로 부활에 관한 표현을 말하거나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빈 무덤'이라는 묘한 표현을 만납니다.
나와 세상에서 관련된 사람이 삶을 마친 다음, 그를 무덤에 모셨는데 시간이 지나서 그 무덤이 비었다고 해서 무조건 부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일에 신앙으로 해석하는 부활이 이루어지려면 또 다른 조건이나 생각하는 내용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은 세상의 사람이 누구나 만나는 심드렁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하느님의 일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그 내용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제자들이 모여 있던 곳에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 여인들은 어떤 마음을 갖고 아침 일찍부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을까요? 함부로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매우 간절한 마음과 세상에 사셨던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특별히 대했던 마음을 읽고서 그 바람이 자기들의 삶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보신 하느님께서 그녀들의 삶에 놀라운 일을 이루신 것이 부활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하면서 읽는 내용에 부활에 관한 설명은 없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랄 수는 있지만, 부활은 세상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신 일이고, 우리의 처지에서는 온전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설명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부활이 나에게 실현되지 않는다고 우리는 생각해야 할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선물은 기대하는 사람에게 좋은 의미를 갖기 마련입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세상에 실현하신 구원의 축제에 제가 정성껏 참여하게 도우시고, 그 축복을 진정으로 누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