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7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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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원주교구 옛 단양성당 터 김범우 순교성지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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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5-06 ㅣ No.2530

원주교구 옛 단양성당 터 ‘김범우 순교성지’ 선포


5월 31일 공식 선포미사 봉헌

 

 

- 원주교구는 5월 31일자로 하느님의 종 김범우(토마스)가 귀양와 순교한 옛 단양성당 터 일원을 ‘단양 김범우 순교성지’로 선포했다. 서울대교구 명동본당 제공

 

 

원주교구장 조규만(바실리오) 주교가 하느님의 종 김범우(토마스, 1751~1786) 순교 240주년을 맞아,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상·하방리 옛 단양성당 터 일원을 ‘단양 김범우 순교성지’로 선포한다. 공식 선포 일자는 5월 31일이다. 교구는 공식 선포일 당일 오후 2시 성지에서 조규만 주교 주례로 성지 선포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조선 왕조 치하 순교 133위 중 한 명으로 시복이 추진되고 있는 김범우 순교자는 서울 출신 역관(譯官)으로, 이벽(요한 세례자)에게 교리를 배우고, 1784년 겨울 이승훈(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은 한국교회 초창기 주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동안 김범우의 유배지와 선종 장소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제기돼 왔다. 이에 교구는 2025년 5월 24일 충북 단양 올누림센터 강당에서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2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고, 김범우가 단양에 귀양 왔으며 단양에서 순교했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확인하고 학술적으로 논증했다. 옛 단양성당 아래 위치한 동헌(東軒)과 형옥(刑獄)은 김범우를 비롯한 순교자들이 흘린 피와 땀, 신앙 고백이 얼룩진 곳이기도 하다. 

 

김범우는 1785년 봄 서울 명례방 자택에서 신앙 집회 중 체포돼 형조로 압송되면서, 한국교회 첫 박해인 을사추조적발사건의 중심인물로 부각됐다. 이 과정에서 양반들은 훈방됐지만, 중인이었던 김범우는 형조판서의 강요와 거듭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굳게 증언했다.

 

이후 그는 노역형이 부과되는 도배형(徒配刑)을 받아 단양으로 유배됐으며, 유배지에서도 한결같이 큰 소리로 기도를 바치고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하지만 결국 형벌의 후유증으로 쇠약해진 그는 1786년 선종했다. [가톨릭신문, 2026년 5월 3일, 박지순 기자]

 

 

원주교구 ‘단양 김범우 순교 성지’ 선포한다


귀양지 · 순교지 역사 재확인… 옛 단양성당 터 성지로, 31일 미사 봉헌

 

 

원주교구가 충북 단양군 단성면 상·하방리 옛 단양성당 터 일원을 ‘단양 김범우 순교 성지’로 선포한다. 교구는 5월 31일 오후 2시 현지에서 미사를 거행하고 성지 지정을 공식 선포할 예정이다.

 

교구장 조규만 주교는 성지 인준 및 선포 경위를 밝힌 공문에서 “김범우의 동생 김현우의 증언과 다블뤼 주교의 「조선주요순교자약전」은 김범우가 단양으로 귀양왔고 단양에서 순교했음을 전하고 있다”며 “지난 2025년 5월 ‘을사추조적발사건 2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통해 김범우 토마스가 단양으로 귀양오고 단양에서 순교했음을 다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곳 단양은 하느님의 종 김범우 토마스 이외에도 1827년 정해박해 때에는 유순지(라우렌시오, 함경도 무산 순교)가,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이용우(베드로, 좌포도청 순교)가, 1868년에는 김 작은쇠(토마스, 충주 순교)가 문초를 당하고 옥에 갇혔던 곳”이라며 “교구 관할인 옛 단양성당 아래편에 있었던 단양 동헌과 형옥은 이처럼 하느님의 종 김범우 토마스를 비롯한 순교자들이 흘린 피와 땀과 신앙고백이 얼룩져 있는 곳이기에 단양 동헌과 형옥이 가까운 옛 단양성당 터를 교구 ‘단양 김범우 순교 성지’로 선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느님의 종 김범우(토마스, 1751~1786)는 서울 출신 역관으로 이벽(요한 세례자)에게 교리를 배우고, 1784년 겨울 이승훈(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1785년 3월 한국 천주교회의 첫 박해인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형조에 압송되어 형벌을 받았지만 배교를 거부했다. 결국 노역형이 부과되는 도배형을 받아 단양에 귀양 보내졌고, 이곳에서도 한결같이 큰 소리로 기도를 바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을 가르쳤으나 형벌 후유증으로 1786년 선종했다.

 

한국 교회는 2013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김범우 토마스를 포함해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의 시복 추진을 결정해 현양해오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5월 3일, 장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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