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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4) 연민과 동행, 약자를 향한 어머니의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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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4) 연민과 동행, 약자를 향한 어머니의 마음
사순 1주간 주일 복음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우리 삶에도 광야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한켠에 설명할 수 없는 메마름과 외로움이 자리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이유 없이 찾아오는 공허함, 그리고 문득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들. 어쩌면 우리 안에 스쳐 가는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광야일지 모릅니다.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이들과 함께 ‘자신의 광야’에 대해서 나눔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예상보다 훨씬 깊은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지난날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서 들은 말로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마치 자신이 살아온 시간 전체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지금은 바로 그런 광야를 지나고 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평소에 그런 아픔을 드러내시던 분이 아니었기에, 그분의 광야는 더욱 뜻밖이었고 마음 깊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조용히 성모님께 그분을 위한 전구를 청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성모님께서 약한 이들의 전구자로 우리 곁에 계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상처받은 이들의 어려움을 곧바로 없애 주시는 방식으로 일하시기보다 그들의 아픔 곁에 함께 머무르시며 하느님께 전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 성경 속의 마리아 – 약자의 노래를 부르다
성모님의 연민과 동행은 성경 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엘리사벳을 찾아가신 성모님은 마니피캇을 노래하셨습니다. 이 노래는 단순한 개인적 감사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노래이며, 역사 안에서 억눌린 이들을 향한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찬가입니다. “그분께서는 …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1-53) 성모님은 스스로를 “비천한 종”이라 부르시며, 권력의 자리에 서 있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변방의 젊은 여인이었고, 아무런 사회적 영향력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 모습은 십자가 아래에서 더욱 깊어집니다. 모든 제자들이 흩어진 자리에서 성모님은 끝까지 서 계셨습니다. 아드님의 고통을 막을 힘은 없으셨지만,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교회가 성모님을 ‘고통의 어머니’라 부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모님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 서 계시는 동행자의 전형이십니다.
2. 역사 속의 마리아 –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시다
성모님의 약자와의 동행은 성경 이후에도 이루어집니다. 1531년 멕시코 테페약(Tepeyac) 언덕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당시 원주민들은 식민지 통치를 당하며 억압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권력자가 아니라 가난한 원주민 후안 디에고에게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내 작은 아들, 내 가장 작은 아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말씀은 단순한 애칭이 아니라, 짓눌린 이의 존엄을 다시 일으키는 위로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그곳에 성당이 세워져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이 위로받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하여 황량한 언덕은 위로의 장소가 되었고, 소외된 이들의 자리는 은총의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교회는 이 사건을 통해 성모님을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 고백합니다. 이는 어떤 이념의 언어라기보다, 마니피캇에서 이미 드러난 신앙의 고백을 이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약자를 잊지 않으시며, 성모님께서는 그 구원의 길에서 가장 먼저 약자 곁에 서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3. 오늘의 교회와 마리아 – 교황들의 목소리
오늘날 교황님들께서도 약자들의 고통과 불안을 성모님의 전구에 맡기고 계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난민과 이주민, 그리고 세상의 무관심 속에 놓인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시며, 그들의 눈물을 성모님께 의탁해 오셨습니다.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도 전쟁과 위기, 그리고 급격한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 속에서 흔들리는 인류를 위해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셨습니다. 특히 2025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는, 로마 스페인 광장의 ‘원죄 없으신 성모님 기둥 동상’ 앞에서 성모님께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오 마리아여, 희망이 꺼지지 않은 수많은 자녀들을 굽어보소서. …
거룩한 문들이 열렸듯이, 이제는 다른 문들도 열리게 하소서. 가정의 문들, 평화의 오아시스의 문들이 열려 그 안에서 존엄이 다시 꽃피고, 비폭력을 배우며, 화해의 예술을 익히게 하소서. … 교회는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 동시대인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특히 가난한 이들과 모든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 우리는 준비되지 못한 채, 무력한 듯 느껴지는 변화들 속에서 씨름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언제나 백성과 함께, 백성 가운데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정의와 희망을 부르짖는 인류 안에서 누룩이 되게 하소서. …
어머니, 평화의 모후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4. 레지오 단원들의 자리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서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전쟁터 한가운데 있지 않고, 난민의 처지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모님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 신앙 안에서 흔들리는 이들, 가정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곁에 조용히 함께 있으며, 기도로 동행하며,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는 것, 이것이 바로 성모님의 연민을 이어가는 길입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마음을 배우는 곳입니다. 성모님은 낮은 자리에서 고통받는 이들 곁에 서서, 하느님께 그들을 맡기셨습니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 성모님의 시선을 따라 함께 걸으면 좋겠습니다. 연민과 동행의 길 위에서,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희망의 표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4월호, 전인걸 요한 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0 5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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