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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묵주기도 학교: 관상 여정의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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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기도 학교] 관상 여정의 시작
관상 여정을 여는 첫 호흡
묵주기도는 개인적 관상과 하느님 백성의 교육뿐 아니라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날마다 영성 훈련의 풍부한 기회를 제공합니다(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3항). 그러니 묵주기도의 시작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돌려세우는 첫 동작이며, 동시에 매일의 삶을 복음화의 방향으로 훈련하는 출발점입니다. 방향이 바로 서면 마음이 돌아오고, 마음이 돌아오면 기도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성호경: 기도를 ‘하느님 안에’ 두는 첫 동작
묵주기도는 십자고상을 잡고 성호를 그으며 ‘성호경’으로 시작합니다. 기도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십자고상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십자고상에서 기도의 순환이 시작되고, 기도의 순환이 끝나며, 신앙인의 삶과 기도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합니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이릅니다(교서 36항).
이 짧은 동작과 기도문은 작은 습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도의 자리를 옮기는 행위입니다. 내 감정과 분위기 안에서 기도를 꾸려 가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의 은총 안에 기도를 두는 일’입니다. 오늘의 기도가 내 능력이나 기분의 산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첫 고백입니다.
우리가 십자고상을 잡는 순간, ‘혼자 기도하는 사람’에서 ‘주님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성호경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묵주기도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신경: 관상 여정의 시작
한국 교회는 대체로 시작 기도에서 사도신경을 바칩니다. 신경은 “지금 내가 드리는 기도가 교회의 신앙 위에 놓여 있다”라는 고백이며, 묵주기도의 여정을 흔들리지 않게 붙드는 기초입니다. 동시에 신경은 우리가 묵상할 신비인 주님의 탄생과 죽음, 부활을 미리 비추는 ‘서론’이 되어, 관상으로 들어갈 길을 열어 줍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 시작을 단 하나의 방식으로 고정하지 않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에서 지역 교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묵주기도를 시작해 왔음을 언급하며, 그 관습들이 관상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된다면 “모두 똑같이 정당”하다고 말씀하십니다(교서 37항). 그래서, 어떤 공동체는 시편 70[69]편 첫 구절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로 시작합니다. 이는 기도하는 사람이 먼저 자신을 꾸미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라는 태도를 세우게 합니다. 그 겸손이 마음의 숨을 트이게 합니다. 또 어떤 공동체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으로 시작하여, 보편 교회의 신앙 고백 위에서 관상의 여정을 또렷이 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출발처럼 보여도 목적은 같습니다. 시작은 ‘정답 맞히기’가 아니라 ‘준비하기’입니다. 시작 기도는 우리 마음을 단번에 완벽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흩어진 마음을 다시 모아 기도의 숨을 고르게 쉬게 하는 출발점입니다.
주님의 기도-성모송-영광송-구원을 비는 기도: 호흡의 리듬
시작 기도는 신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첫 신비 선포 전에 바치는 ‘주님의 기도–성모송 3번–영광송–구원을 비는 기도’는 묵주기도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관상으로 들어가는 리듬임을 보여 줍니다. 주님의 기도는 “무엇을 청할지”보다 먼저 “누구께 나아가는지”를 확정하는 첫 청원입니다. 이어지는 성모송 세 번은 마리아 공경이 결국 삼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임을 드러내며, 마음을 그리스도께 향하게 합니다. 영광송은 시선을 하느님께 고정하며, 구원을 비는 기도를 통해 구체적인 청원을 지향합니다. 이러한 기도 형식은 본기도로 들어가도록 돕습니다.(‘구원을 비는 기도’는 레지오 회합 중에는 바치지 않습니다.)
묵주기도는 본질상 고요한 운율과 생각을 할 수 있는 느릿한 속도로 바쳐야 합니다(교서 12항). 이 운율은 흩어진 마음을 다시 묶어 중심으로 돌아오게 하는 힘입니다. 호흡처럼 기도도 리듬이 살아 있을 때 마음을 살립니다. 그러므로 시작 기도는 분심을 없애는 장치가 아니라, 분심이 와도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는 길입니다.
시작 기도는 ‘관상’으로 들어가는 문
시작 기도는 묵주기도가 관상이라는 깊은숨으로 들어가는 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상이 없는 묵주기도는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아져 기도문만을 반복하는 위험을 초래하게 됩니다(교서 12항). 관상은 멀리 있는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며 삶을 다시 하느님 안에 놓는 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에 머무를 때 언제나 그분을 더욱 닮아가는 동화의 여정을 걷게 됩니다(교서 15항 참조).
공동체 기도나 가정 기도에서는 전통대로 사도신경으로 시작하되, 짧은 한 문장 안내를 곁들이면 좋습니다. 예컨대 “오늘의 묵주기도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길입니다”(교서 3항 참조)라고 말입니다. 회개와 겸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을 때는 사도신경을 대신하여 시편 70[69]편 첫 구절로 시작하여 “주님, 저는 도움이 필요합니다”라는 태도를 먼저 세우면 좋습니다(교서 37항 참조). 교리교육이나 대축일처럼 공적 분위기에서는 기도할 때,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활용해 보편 교회의 신앙 고백을 더 선명히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핵심 원칙은 하나입니다. 시작이 관상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도록(교서 37항), 간단하지만 또렷한 리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묵주기도의 시작 기도는 작은 문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루 전체의 영적 호흡을 바꾸는 지점입니다. 시작에서 기도의 자리를 하느님께 옮기고, 운율을 회복하고, 다시 그리스도의 얼굴로 방향을 맞추는 순간, 기도는 생활의 한 부분이 됩니다. 따라서 묵주기도는 개인의 기도를 넘어, 하느님 백성을 새로운 복음화의 길로 단련시키는 매일의 영성 훈련입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4월호, 박상운 토마스 신부(전주교구 사목국장)] 0 12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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