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6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성경자료

[신약] 성경 인물 이야기: 하혈하는 부인과 야이로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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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6-09 ㅣ No.9676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하혈하는 부인과 야이로의 딸 (1)

 

 

마르코 복음서 5장에는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가진 이야기가 나오는데, 두 가지 기적이 마치 샌드위치처럼 연결된 것입니다. 첫 번째 기적의 대상은 야이로라는 이름을 가진 회당장의 딸입니다.

 

참고로 회당은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 이후 뿔뿔이 흩어진 유다인들의 새로운 신앙 중심지로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회당장은 회당에서의 예배를 주관하는 책임을 맡은 평신도 대표였습니다.

 

이야기는 야이로와 예수님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의 체면도 집어던진 채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 집에 가 어린 딸을 치유해 주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이 딸은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고 하는데 무슨 병 때문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간절한 청에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답하십니다. 딸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리신 예수님은 머뭇거림 없이 즉시 길을 떠나십니다.

 

그런데 독자들이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기를 기대하며 지켜보는 바로 이때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삽입은 야이로 딸의 이야기에 극적인 효과를 줍니다. 마치 연속극 한 회의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 ‘다음 시간에….’라고 하며 끊는 것과 같습니다.

 

새로운 이야기에는 12년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인이 등장하는데, 성경의 묘사에 따르면 이 여인은 빈발월경의 증상을 보이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정상주기보다 짧은 주기로 생리하는 것으로서 대단히 고통스러운 병에 속합니다.

 

이 하혈하는 여인은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는 극심한 육신의 고통 외에도 종교적으로 부정한 자가 되어 사회에서도 소외되었습니다:

 

여자에게서 무엇인가 흐를 경우, 곧 그곳에서 피가 흐를 때에 그 여자는 이레 동안 불결하다. 그 여자의 몸에 닿는 이는 모두 저녁때까지 부정하게 된다. 그 여자가 불결한 기간에 눕는 자리는 모두 부정하게 된다. 그가 앉는 자리도 모두 부정하게 된다.(레위 15,19-20)

 

또한, 이 여인은 병의 치유를 위해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의 의술은 과학보다는 미신에 가까웠습니다. 탈무드의 기록에 따르면 이러한 병에 적용되는 치료법은 타조알을 태운 재를 천 조각에 싸서 가지고 다니거나 암나귀의 똥 속에서 발견된 보리 낟알을 가지고 다니는 것 등이 있었는데, 이런 방법으로 치유가 될 리 없었죠. 그러니 헛되이 모든 재산만 탕진한 것입니다.

 

이렇게 삼중고에 시달리던 여인은 어디선가 예수님의 치유 능력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함에 사람들 속에 숨어서 예수께 다가갑니다. 만일 예수님이 아신다면 부정이 옮을까 하여 몸에 손을 대게 하실 리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겠죠. [2026년 6월 7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톨릭안동 3면]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하혈하는 부인과 야이로의 딸 (2)

 

 

여인은 예수님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뒤쪽에서 몰래 다가가 간신히 예수님의 옷 하단 네 곳에 달려 있던 술 중 하나에 손을 댑니다. 이 여인은 고작 그 정도로 예수님과 접촉한 것만으로도 자신의 병이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행동은 어찌 보면 안일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인이 믿는 바대로 이루어집니다. 그 오랜 세월 괴롭히던 병이 한순간에 나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딸로 부르시면서 믿음이 그를 구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애정을 듬뿍 담은 표현입니다. 이 여인의 믿음이 참으로 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치유된 여인에게 단지 병이 나았다고 하시지 않고 구원받았다고 하십니다. 육신의 병뿐 아니라 종교적 부정으로부터도 구해졌다는 말이겠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부정한 것과 접촉하셨으나 부정해지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만드셨습니다. 부정한 것이 감히 예수님을 범접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깨끗하게 하는 힘이 부정의 힘보다 큰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야이로의 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서둘러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사람들이 와서 그의 딸이 이미 죽었음을 알립니다. 아마 야이로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고 절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유다 전통 장례 풍습에 따르면 반드시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곡을 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 전문적으로 곡을 하는 사람들을 고용했습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적어도 두 명의 피리 부는 사람과 한 명의 곡하는 여인을 고용해야 했습니다. 곡은 매장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다고 하시자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예수께서 죽음을 잠으로 부르는 유일한 경우가 아닙니다: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었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냥 잠을 잔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이르셨다. “라자로는 죽었다.”(요한 11,11-14)

 

예수께서 죽음 대신 잠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곧,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부활 때까지 잠자고 있는 기간이라는 말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부활하여 잠에서 깰 때까지 그냥 두지 않고 지금 깨우십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죽음의 영역에까지 미침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2026년 7월 5일(가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가톨릭안동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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