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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2: 스핀 유리와 우리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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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1-17 ㅣ No.437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2) 스핀 유리와 우리의 신앙


공동체에 ‘스핀 유리’ 생기지 않도록 성령의 도우심 청해야

 

 

이 글을 쓰는 저는 가톨릭교회의 사제이면서 동시에 이론물리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사제품을 받은 직후부터 주변의 많은 분들로부터 우리 가톨릭교회의 교리 내용과 현대 과학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는지, 과학과 신앙 간의 조화를 어떤 식으로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문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 한 해 동안 매달 두 차례씩 과학과 신앙 간에 조화가 충분히 가능하며 이 둘 모두가 하느님을 섬기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가톨릭신문의 지면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강조해 보고자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한 첫 번째 시도로서 저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주 전공 분야의 예를 통해 우리의 신앙에 대해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이 예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앞으로 제가 이 지면을 통해서 어떤 식의 논의를 할 것인지를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0월 초에 발표된 ‘2021년도 노벨 물리학상’은 “복잡한 물리계의 이해에 대한 획기적인 공헌”에 관한 업적으로 조르지오 파리시(Giorgio Parisi, 이탈리아 사피엔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가 다른 두 명의 과학자와 함께 공동 수상하였습니다. 파리시가 노벨상을 받도록 한 대표적인 연구 주제는 ‘스핀 유리’(Spin Glass)라는 것인데요, 이제 20여 년간 스핀 유리를 연구해온 제가 물리학적인 딱딱한 설명보다는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간단한 예를 통해 스핀 유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핀 유리의 개념을 설명하는 그림. 왼쪽 아래가 스핀 유리로, 고착화된 +J와 -J가 존재함으로 인해 방향이 정렬되지 않은 물질이다. 김도현 신부 제공.

 

 

이제 우리 각자가 다니는 본당에 새로운 단체가 하나 생겼다고 해봅시다. (레지오마리애든 구역반모임이든 무엇이든 좋습니다.) 창립 멤버는 총 4명입니다. (그 각각의 멤버를 1·2·3·4라고 부르기로 하죠.) 그런데 이 4명이 모두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1과 2, 2와 3, 3과 4는 사이가 좋지만 (이 좋은 관계를 +J로 표기하죠.) 4와 1 사이는 어쩐 일인지 사사건건 싸우는 사이입니다. (이 안 좋은 관계는 –J라고 표기하죠.)

 

그런데 1번이 어느 날 2번에게 카톡으로 “이제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었으니 오랜만에 다 같이 모여서 식사나 한번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2번은 “OK”라고 동의한 후 (동의를 ↑로 표기하겠습니다), 3번에게 동일한 제안을 합니다. 3번 역시 “OK”라고 동의한 후, 4번에게 제안합니다. 4번 역시 3번의 제안에 “OK”라고 동의했으나, 잠시 뒤 이 제안이 1번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고서 이 제안에 반대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반대를 ↓로 표기하겠습니다.) 이렇듯이 4번은 동의와 반대 두 갈림길에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3번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동의를 하고 싶은데, 1번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반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생기면서 결정을 못한 채로 쩔쩔매는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바로 이 쩔쩔매는 상태는 바로 3번과 4번 사이의 +J인 관계 및 4번과 1번 사이의 –J인 관계로부터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J와 –J라는 관계가 하나라도 바뀌지 않는 한 쩔쩔매는 상태는 바뀔 수 없게 되고 4번은 큰 고심에 빠지게 됩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스핀 유리는 바로 고착화된 +J와 –J가 무작위로 고체 안에 존재함으로 인해서 그 고체 안의 스핀(그 고체가 자석이 되도록 하는 물리적 현상)이 ↑와 ↓를 결정하지 못한 채 쩔쩔매는 상태를 가진 특이한 자석을 의미합니다. 4번과 같은 쩔쩔매는 상태가 많을수록 이 자석은 자석 고유의 특성인 철을 끌어당기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이도 저도 아닌 고체 덩어리인 스핀 유리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스핀 유리는 1970년경에 처음 발견된 이래로 상당히 많은 연구가 지금까지 진행되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신앙은 원칙적으로는 아무런 주변의 도움이 없어도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잘 발전시켜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는 세속적인 유혹이 넘쳐나는 실제 삶 안에서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당이라는 조직과 여러 단체, 모임 등이 우리 각자의 신앙에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각 본당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우리 각자의 신앙을 증진시켜서 우리 각자가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여러 단체, 모임 안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분들 역시도 나의 구원에 도움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다니는 본당, 내가 속한 단체나 모임에서 위에서 예를 든 4번과 같은 쩔쩔매는 상태가 여러 군데에 존재하게 된다면 그 교회, 단체, 모임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그 교회, 단체, 모임은 자석이 자석 고유의 능력을 잃어버린 스핀 유리가 되는 것처럼 그 교회, 단체, 모임 특유의 성격과 카리스마를 잃어버린 채 영적으로 무기력한 곳으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마태오복음에서 말씀하신 맛을 잃은 소금, 밖에 버려져 짓밟히고 마는 소금처럼 말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이제 저는 이 말씀을 여러분께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각자가 각 공동체 안에서 쩔쩔매는 상태를 유지하게 되면, 결국 여러분이 속한 그 공동체는 바로 여러분 각자의 쩔쩔맴으로 인해 자석 고유의 능력을 잃은 스핀 유리나 맛을 잃은 채 버려져 짓밟히는 소금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해당 공동체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J에서 +J로 변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공동체 내의 모든 구성원들이 +J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면 그 공동체는 자석으로서의 역할,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다 하는 살아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 듯이 –J인 인간관계를 +J로 바꾸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송가에서도 표현되듯이, 성령께서 우리의 인간관계 안에 직접 개입하셔서 “굳은 맘을 풀어 주시고 찬 마음을 데우시고 바른 길을 이끌어” 주실 때에 비로소 우리 각자의 공동체는 살아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 우리의 본당, 우리 교구, 우리나라 교회 전체가 살아있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J를 +J로 만드는 초월적인 능력을 지니신 성령께서 도와주실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가톨릭신문, 2022년 1월 16일, 김도현 바오로 신부(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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