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3일 (토)
(녹)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심리] 토닥토닥: 하느님이 벌 주실까 너무 무서워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6-29 ㅣ No.1081

[박예진의 토닥토닥] (25) 하느님이 벌 주실까 너무 무서워요 (상)

 

 

여러분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느님과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인격적인가요, 아니면 수직적인가요?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은이씨의 이야기입니다.

 

“아빠 사업이 망한 뒤로 집안이 좀 더 나아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은 늘 싸우다가 결국 이혼을 하셨고, 그 때문에 저는 고생을 많이 하며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는 아르바이트하면서 다녔고, 졸업 후에도 열심히 일하며 저축했습니다. 다행히 좋은 남편을 만나 감사한데, 여전히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하나뿐인 딸을 학원에 보내주지 못했습니다. 딸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배우고 싶다는 것을 지원해주지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나 열심히 살고 기도하며 주일 미사도 빠지지 않는데, 왜 우리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께 묻고 싶은데, 투정부리면 벌 받을 것 같아 무섭습니다.”

 

여러 발달심리학자는 “인간의 어린 시절은 그 사람의 인격 형성과 전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에릭슨은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에서 생기는 기본적 신뢰가 개인의 신앙형성에 초석이 된다”고 했고, 아들러도 “어린 시절의 부모와의 관계, 가정환경, 문화·사회적 영향, 가족의 죽음, 자녀의 소속 욕구 등이 자신과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영성에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어린 시절은 신체와 더불어 인지·정서적 발달을 통해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당연히 신앙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겠지요.

 

은이씨는 그렇게 기도해도 가정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것에 대해 억울합니다. 하지만 벌 받을 게 두렵기도 해서 주일 미사를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은이씨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신에게도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생계와 부부싸움으로 은이씨를 방치하다시피 했습니다. 늘 자고 있을 시간에나 집에 들어와 은이씨는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부모에게 속해 있다는 느낌과 그로 인한 안정감은 전 생애에 있어 가장 큰 과제입니다. 그런데 은이씨에게는 그런 부분이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그분의 사랑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평생을 고생하면서 살다 보니 하느님의 사랑은 느껴지지 않고, 주님이 진정 계시는가에 대한 의심도 듭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건으로 불행해지거나 과거에 형성된 부정적인 기억에 붙들려 있지는 않습니다. 은이씨도 가난하지만, 가족과 미래를 위해 노력하면서 간혹 그들의 사랑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럴 때면 ‘그렇지! 하느님이 함께하시는구나!’ 싶어 미사에 가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이렇게 일상에서의 긍정적 체험이 없었다면 아마 신앙생활을 지속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하느님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과 긍정적인 경험을 통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나는 버림받을 수 있다. 그래서 더 기도해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우리 가족은 가난하지만 하느님 사랑 안에서 행복하다’는 긍정과 희망으로 하느님에 대한 왜곡된 표상을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어렵겠지만, 생활 속 아주 작은 것에서도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느껴보고, 일상생활에서 안정감과 평화를 점차 확장해보세요. ‘하느님께선 우리를 상처가 아닌 사랑 속에 살도록 온 마음을 다하십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6월 26일, 박예진(율리아, 한국아들러협회장)]

 

 

[박예진의 토닥토닥] (26) 하느님이 벌 주실까 너무 무서워요 (하)

 

 

지난주에 이어 하느님께 투정을 부리면 벌을 받을 것 같아 두려운 은이씨의 이야기입니다.

 

“아빠 사업이 망한 뒤 집안이 좀 더 나아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은 늘 싸우다가 결국 이혼하셨고, 그 때문에 저는 고생을 많이 하며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녔고, 졸업 후에는 열심히 일하며 저축했습니다. 다행히 좋은 남편을 만나 감사한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하나뿐인 딸을 학원에 보내주지 못했습니다. 딸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배우고 싶다는 것을 지원해주지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나 열심히 살고 기도하며 주일 미사도 빠지지 않는데, 왜 우리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께 묻고 싶은데, 투정부리면 벌 받을 것 같아 무섭습니다.”

 

지난번 긍정과 희망으로 하느님의 표상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하느님의 표상이란 “하느님 실재에 대한 느낌, 개인이 상호작용하는 하느님에 대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난예, 2002)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개개인이 체험하는 그분은 서로 다릅니다. 각자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다른 역동과 표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결핍된 욕구를 절대자로부터 보상받고자 하면서 각기 다른 신을 만나 체험합니다. ‘~하기 위해서’라는 조건이 붙는 경우, 신앙은 개인의 성장을 촉진하기보다는 하느님에 대한 부정적 표상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왜곡된 신념으로 하느님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낳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신에 대한 불신, 신앙 공동체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올바른 방향은 성경 말씀을 토대로 한 ‘하느님의 표상’을 따르는 것입니다. 은이씨의 경우 가족에 대한 헌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의지와 행동이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는 일이며 가족에게는 사랑의 실천이 됩니다. 정신분석학자들에 따르면,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신에 대한 표상에도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은이씨의 경우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생활이 어려워져도 부모님처럼 이혼하지 않고, 더 노력하면서 가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형편 때문에 학원에 보낼 수 없던 자녀지만 대학 입학을 위한 기도를 하느님께 수없이 바쳤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영적인 확신이 은이씨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살아계신 분’이라는 믿음의 뿌리가 자란 것이죠.

 

은이씨는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것을 통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부인과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면서 위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받고 힘을 얻어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 이것을 ‘사랑’이라고 안 하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욕구는 해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욕망은 다릅니다. 욕망은 더 가지지 못해서 늘 부족함을 느끼게 합니다. 나는 하느님에 대해 어떤 표상을 가지고 있나요? 나의 욕망을 위해 내게 필요한 하느님을 만들진 않았나요? 현실적으로 늘 부족한 나를 하느님께서 채워주시길 바라지는 않았나요? 하느님께서는 그 자체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은이씨가 가족을 위해 그 자리에서 노력하는 것 같이요. 나의 부족함을 아시고 앞, 옆, 뒤에서 언제나 사랑으로 함께해주시는 분임을 믿고 따른다면 어떨까요?

 

※ 자신, 관계, 자녀 양육, 영성 등으로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있으신 분은 메일(pa_julia@naver.com)로 사례를 보내주세요. ‘박예진의 토닥토닥’을 통해 조언해드리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7월 3일, 박예진(율리아, 한국아들러협회장)]



633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