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3일 (토)
(녹)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초연함의 영성1: 융통성 없는 경직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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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6-26 ㅣ No.1829

[현대 영성] 초연함의 영성 (1) 융통성 없는 경직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삶에서 마주 오는 시련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의 원인 중에 하나는 ‘집착(attachment)’이다. 연인 사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 참된 사랑이 아니라 집착하는 경우 얼마나 서로를 힘들게 하는지 우리는 체험으로 잘 알고 있다. 집착은 물건, 재물, 건강, 능력, 직위, 사람 등에 대한 외적인 것에서부터, 과거 기억, 칭찬, 실수, 미운 사람 등에 대한 심리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무엇보다 자아에 대한 집착은 ‘오직 그것만’을 바라보게 하여 그곳에 묶이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를 외적, 내적으로 고착되게 한다. 사막 교부, 조시무스 아빠스는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이 해로운 것이 아니다. 그 무엇인가에 애착심을 갖게 되는 것이 해롭다”라고 했다. 애착심이나 집착은 우리 영성 생활에서도 아주 큰 걸림돌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집착의 반대되는 말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초연함(detachment)이다. 초연함은 도달하기 힘들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영성이다. 근본적으로 초연함은 ‘분리(separation)’를 뜻한다. 영적 여정에서 초연함은 창조물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인데, 이는 자신이 창조된 목적과 자신의 최종 행복을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기 위해서이다. 물질적 소유, 명예, 유명세, 권력, 건강 등을 우리가 찾으며 살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인간의 완전한 성취를 이룰 수 없다. 창조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본래의 창조된 영역 밖, 즉 하느님께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초연함은 사람들과 세상을 물러나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다. 초연함은 창조물에 대한 애착, 심지어 하느님의 선물에서도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아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런 자유로움 속에 있는 이들은 모든 망상들을 내려놓고 진정한 실재를 볼 수 있게 되는 초연함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초연함에 도달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도 『새 명상의 씨』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한두 사람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고 우주의 붕괴를 막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이기심과 애착은 마지막까지 ‘우리 힘으로 넘을 수 없는 산’인 것 같다. 또한 머튼은 초연함에 도달하기 힘든 이유 중에 하나로 융통성 없는 경직성을 들고 있다. “내적 순결과 섬세한 양심의 초연함과 정화에도 진정으로 거룩한 사람들조차 대부분 전혀 알지 못하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가장 엄격한 수도원에서도, 완덕을 닦으려고 있는 힘을 다하는 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자기도 모르는 이기심에 얼마나 지배를 받고 있는지, 그들의 덕행이라고 하는 것이 편협하고 인간적인 이기심에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생각조차 못합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초연해지지 못하는 것은 사실 흔히 열심하다는 사람들의 이런 융통성 없는 경직성 때문입니다.”(『새 명상의 씨』)

 

융통성 없는 경직성을 벗어나 진정한 영적 자유로움을 위해서는 우선 초연함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초연함은 핵심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초연함은 사랑을 품고 진실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주며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게끔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리고 이것은 하느님께 뿌리를 둘 때 진정 가능하다.

 

초연함에는 외적, 내적, 영적인 레벨이 있다. 물론 인간의 삶을 획일적으로 구별할 수 없고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이 하급 단계의 수준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결국 ‘자아에 대한 집착’이 어떤 이에게는 외적인 물건이나 재물에 대한 집착으로, 어떤 이에게는 인정받고 싶거나 심리적 만족에 대한 집착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영적인 은사를 많이 받고자 하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고상하게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머튼은 초연함에 도달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넘어 내적인 감각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나아가 영적인 좋은 것들로부터도 초연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범위 안에서 물질적, 정신적 사물들을 소유하고 즐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순수하게 소유하고 즐기려면 모든 기쁨을 초월하고 모든 소유를 넘어야 합니다.”(『새 명상의 씨』) 외적인 집착에서 시작하여 내적인 자아를 온전히 그리스도께 맡길 때 주님의 은총은 우리를 망상적 자아에서 벗어나 영적인 자유로움으로 인도할 것이다.

 

[2022년 6월 26일(다해)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가톨릭마산 3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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