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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성령 선교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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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9-20 ㅣ No.676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성령 선교 수녀회 (상)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위한 선교에 헌신

 

 

- 창립자 성 아놀드 얀센 신부와 창립 협력자인 마리아 헬레나 스톨렌베르크 수녀 · 창립 협력자 요세파 헨드리나 스테만스 수녀(왼쪽부터). 성령 선교 수녀회 제공.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시기는 교회가 새로운 문화의 조류들과 만나 긴장과 갈등을 경험하던 시기다. 이에 따라 교회의 선교 활동이 시대적 요청으로 강력하게 대두됐다. 특별히 독일 전역에서 문화 투쟁이 격화되던 시기, 성 아놀드 얀센 신부는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와 하느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이 온 세상에 널리 퍼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얀센 신부는 1837년 독일 고흐에서 태어나 1861년 뮌스터교구 사제로 서품됐다. 1873년, 12년 동안의 중학교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네덜란드 슈타일로 가서 1875년 성 미카엘 대천사 선교사 양성 신학원을 설립했다. 이 신학원은 1901년 1월 25일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세계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말씀의 선교 수도회(SVD, 신언회)가 됐다.

 

본격적으로 선교 사도직을 시작한 얀센 신부는 선교활동에 있어서 신언회가 한계를 느끼는 지점, 즉 여성의 손길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곳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1889년 12월 8일, 2명의 여성을 첫 입회자로 받아들여 성령 선교 수녀회를 창립한다. 얀센 신부는 또한 1896년 12월 8일 기도로써 선교 활동에 참여하는 관상 봉쇄 수녀회인 성체 조배의 성령 선교 수녀회를 설립했다.

 

성령 선교 수녀회의 첫 입회자인 2명의 여성은 마리아 헬레나 스톨렌베르크(1852~1900)와 요세파 헨드리나 스테만스(1852~1903)였다. 성령 선교 수녀회의 창립 협력자인 이 2명은 각각 1995년과 2008년 시복됐다.

 

성령 선교 수녀회는 신언회의 여성 선교 파트너로 창립된 만큼, 선교 봉사는 수녀회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특별히 수녀회는 선교의 소명에 헌신함에 있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들 안에서 생명을 나누고 촉진하는데 절대적으로 헌신한다.

 

회원들의 선교 성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게서 그 힘을 얻는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은 자기를 내어줌으로부터 시작되며, 공동체적 일치의 삶을 통해 하느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특별히 성령의 은총에 의지해 모든 선교 활동은 성령의 활동이자 계시이며 “성령께서는 주님의 손길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회원들을 부르고 계신다”고 여긴다.

 

수녀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 각국 회원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국제 공동체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수녀회의 창설자인 얀센 신부는 ‘육화된 말씀’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곳에 선교사를 파견해 그들의 문화 전통을 통해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홍보 매체를 통해서도 선교 의식을 고양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또한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확신으로 과학의 영역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 역시 강조했으며, 교회 일치 운동에도 활발하게 투신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9월 21일, 박영호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성령 선교 수녀회 (중)


1987년 한국 진출… 현재는 관구로 승격

 

 

- 한국 공동체 초창기 회원들의 모습. 성령 선교 수녀회 제공.

 

 

성령 선교 수녀회는 1889년 12월 8일, 성 아놀드 얀센이 네덜란드 슈타일에서 복녀 마리아 헬레나 스톨렌베르크와 복녀 요세파 헨드리나 스테만스의 협력으로 창립했다. 이에 앞서 창립자 얀센 신부는 남자 수도회인 말씀의 선교 수도회(SVD, 신언회)를 1875년 창립했고, 기도로써 선교를 뒷받침하는 관상 봉쇄 수녀회인 성체조배의 성령 선교 수녀회를 1896년 창립했다. 이들 세 수도회의 1만여 명 회원들은 창립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복음의 씨앗이 전해지지 않은 전 세계 모든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령 선교 수녀회는 현재 전 세계 49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회원 수는 3500여 명으로, 38개 나라의 회원들이 국제 수도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회원들은 교육, 의료, 사회 복지, 정의 평화, 다문화와 이주 사목, 노동 사목과 여성 사목 등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통해 지역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한국 관구의 시작은 1987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중반 아시아 선교를 고민하던 성령 선교 수녀회는 1985년 제2차 아시아 대회에서 아시아 선교 확장을 위해 한국 공동체 설립을 제안했고, 이를 일본 관구에서 관할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86년 고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이듬해인 1987년 3월 9일 일본인 수녀 1명이 파견됐고, 얼마 뒤인 5월 7일 2명의 수녀가 추가로 파견되면서 한국 공동체를 형성해 한국 진출이 이뤄졌다.

 

서울 성북동과 명륜동에 수녀원을 마련한 수녀회는 1992년 한국인 첫 서원자를 배출하는 등 양성에 주력했지만, 본격적인 외부 사도직 활동은 하지 않았다. 일본 관구 분원에 속했던 한국 공동체는 일본 관구의 지원 속에서 초기 양성과 서원자들의 양성에 집중했다.

 

하지만 수녀회는 정기적인 기도 모임을 통해 일반인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그들의 영적 활동을 지원했고, 한국인 초기 양성자와 회원들은 성가정 입양원, 요셉의원, 무료급식소 등에서 정기적으로 무료 봉사 활동에도 나섰다. 또한 선교 본당을 통한 공장 취업 등 빈민 사목 체험, 해외 선교 체험과 수련 등의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2000년 4월 한국 공동체는 지구로 승격돼 더 이상 일본 관구에 속하지 않고 로마의 수도회 총 집행부 소속이 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 공동체 시작을 위해 파견됐던 일본 회원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집행부가 설립되는 동시에 본격적인 외부 사도직 활동이 시작됐다.

 

2012년 한국 관구가 설립됐으며, 2021년 9월 현재 한국 관구에는 한국인 15명, 외국인 9명 등 총 24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 외에도 5명의 한국인 수녀가 해외 선교에 투신하고 있다.

 

한국 관구 회원들은 수도회의 카리스마와 선교 목적에 따라 국내 및 해외 선교에 힘쓰는 한편, 초창기 한부모 가정 아이들을 위한 그룹홈과 에이즈 환자와 감염인 쉼터 사목을 거쳐, 부랑 여성 쉼터, 결혼 이주 여성과 이주 노동자를 위한 다문화 센터, 농촌 사목 등을 전개했다. 나아가 사회 정의와 환경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통해 미래 사도직에 대한 끊임없는 식별을 해오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10월 3일, 박영호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성령 선교 수녀회 (하)


시대에 부응하는 대사회적 활동에 헌신

 

 

- 지난 2019년 2월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성령 선교 수녀회 회원들이 참석한 모습. 성령 선교 수녀회 제공.

 

 

성령 선교 수녀회의 본격적인 외부 사도직 활동이 시작된 것은 2000년에 들어서면서 부터다. 그해 4월, 한국 공동체가 지구로 승격되고, 초창기 수녀회의 기틀을 다졌던 일본 회원들이 본국으로 귀환, 새 집행부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사도직 활동에 나섰다.

 

2000년 6월, 수원 왕림에 있는 마르첼리노의 집에서 공동 사도직을 시작했다. 이는 한국 수녀회 최초의 정식 사도직 및 사도직 공동체다. 수녀회 선교활동 및 영성을 전하기 위해 선교 영성 센터를 설립한 것도 이때다.

 

2003년 1월에는 에이즈 환자 및 감염인들을 위한 쉼터인 서울 강북구 소재 ‘작은 빛 공동체’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위탁받아, 3명의 회원들이 공동체를 이뤄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 사도직은 당시 수녀회 총회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에이즈 환자 및 감염인과 그 가족들을 우선적으로 돌보자고 결의한 데 따른 것이다.

 

2008년에는 서울시 여성 노숙인 시설인 서울 수서동 여성보호센터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민간위탁으로 운영하게 되면서 4명의 회원을 파견했다. 400여 명의 여성 노숙인들을 돌보는 대규모 시설은 운영이 쉽지는 않았지만, 소외된 여성들의 절박한 상황을 고려해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2009년에는 이주민 사목으로 사도직 활동을 넓혔다. 의정부교구의 요청에 따라 구리 엑소더스(EXODUS)를 시작했고, 다문화 가정을 위한 지역아동센터 ‘천국의 아이들’에도 4명의 회원을 파견해 구리에 공동체를 설립했다.

 

2011년에는 수원교구 안양 엠마우스와 수원 엠마우스, 2012년에는 화성 이주민센터에서 이주 사도직을 시작했고, 의왕에 공동체를 설립했다.

 

2013년에는 연천에 농촌 공동체를 설립했다. 공동체 운영은 2016년까지 3년 남짓만 이어져 안타까움이 있지만, 3명의 회원이 공동체를 이루고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난 후 남겨진 독거노인들과 소외된 어린이들에 대한 선교와 생태 공동체 실현을 목적으로 한 의미 있는 사도직 활동이었다.

 

수녀회는 시대와 사회 상황의 변화에 부응,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고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JPIC(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 활동을 새로운 사도직 영역으로 개발하고 있다.

 

회원들 스스로 JPIC 관련 교육들을 수료하고, 탈핵 운동과 세월호 참사 관련 활동, 사드 반대 운동, 강정마을 해군기지 설립 반대를 비롯한 관련 촛불집회 등에 적극 참여하고 대사회적인 연대 활동에 힘써왔다. 특별히 기후위기로 드러나는 환경과 생태계 파괴 현실에 공감하면서, 생태 운동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10월 10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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