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3일 (토)
(녹)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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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괜찮아. 못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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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6-26 ㅣ No.153

[다시 보는 세상] 실패해도 괜찮아. 못해도 괜찮아.

 

 

얼마 전 어느 사이트의 유머 게시판에서 한 아르바이트생의 후기를 읽었습니다. 그가 아르바이트 한 식당에서는 일정 가격에 먹을 것을 8개를 팔았습니다. 어느 날 한 여자아이가 먹을 것을 사러 왔는데 어찌나 예쁘고 말도 잘 하던지 이 아르바이트생은 슬쩍 10개를 담아주었습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엄마에게 달려가 원래 8갠데 저 언니가 10개를 담아주었다고 자랑을 했답니다. 근데 나름 뿌듯해하던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엄마가 이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제대로 계산도 할 줄 모르면 저 언니처럼 저런 일 해야 하는 거야.” 이 글이 왜 유머 게시판에 올라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인터넷에 비슷한 후기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걸 보면, 이런 경우가 제법 일어나는 모양입니다.

 

이미 모두가 알다시피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거나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을 더 보살펴주시고 아껴주시기도 하셨지요. 오히려 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부자나 권력자들이야말로 천국에 오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했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분의 창조물이자 그분께서 만드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를 만들고,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요?

 

많아봤자 13살인 초등학생들이 무기력하고 아무 즐거움이나 행복을 못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데리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눠보면 상당수가 시험공부(공부는 학문이나 기술을 익힌다는 넓은 개념이므로 공부와 시험공부를 구분하고자 합니다.)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의 의지나 꿈도 없이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 버린 경우입니다. 그 어느 것에도 얽매임 없이 뛰어놀고 탐구하면서 앞으로 삶을 살아갈 토양을 다져야 할 아이들이 영어 단어를 모르거나 나눗셈을 못 한다는 이유로 기가 죽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치 패잔병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험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행복할까요? 어느 신문 기사[“최고대학 들어왔지만...” 서울대생 절반 우울증세, 매일경제, 2018.11.30.]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험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진학하는 서울대생의 거의 절반이 우울증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심리상담을 받고 싶다고 답한 서울대생도 51.7%나 된다고 해요. 우울증의 주된 원인은 놀랍게도 정서 문제(정서적 불안감), 교우 관계, 진로 문제였습니다. 서울대라는 엄청난 무기를 손에 쥐고 어디서나 인정받으며 탄탄대로를 걸을 것으로 여겨지던 서울대생이 미래가 불안하여 우울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 아이들은 시험공부를 못하면 패배자라서 행복하지 못하고, 시험공부를 잘해도 불안해서 행복하지 못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0여 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확실하게 느낀 점은 아이들은 저마다 재능을 타고나며 시험공부도 그 재능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이 서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여러 색으로 그려진 한 폭의 멋진 그림처럼 세상을 구성하시는 하느님을 느끼는 것만 같아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재능이건, 필요에 의해서건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기에 존재할 수 있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좋은 대학과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투자를 잘해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지 않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해하지 않고, 오히려 성적이나 경제력으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귀한 인간에게 함부로 계급을 부여하고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거나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고 천시하는 것은 절대로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고통이나 가난이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패배자이기에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대가로 여겨지는 사회라면 아이들은 능력에 상관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적으로 인한 차별이나 지나친 경쟁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많은 분이 현실은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현실을 만들어 가는 것 또한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명이라도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토록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고난과 죽음을 겪으시면서까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새롭게 열어주셨으니까요.

 

고난이나 죽음을 겪을 일도 아닌데 우리가 현실을 핑계 삼아 아이들의 불안과 불행을 방치하는 것은 주님의 삶을 제대로 본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혁명이라도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선 우리 아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나던 순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작은 주먹에 100점짜리 시험지도, 황금열쇠를 쥔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무사히 태어났다는 자체만으로, 단순히 내 곁에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 엄청난 출산의 고통이 다 잊힐 만큼 행복하고 경이롭지 않으셨나요? 이렇게 무사히 아이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나요? 아이들이 존재 자체만으로 은총이고 행복이라는 점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도 모르게 쥐고 있던 아이를 향한 채찍을 내려놓고 “실패해도 괜찮아. 못해도 괜찮아. 넌 그냥 내게 있어 주는 것만으로 너무나 행복한 존재란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소중한 존재란다.”라고 말해주면서 하루에 한 번은 꼭 안아주세요. 내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내 아이가 다른 존재들을 사랑하면서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보살피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자 어쩌면 주님 덕분에 조금은 쉬울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자란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의 귀함을 알고,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와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간다면,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당당하게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높은 자존감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22년 6월 26일(다해)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수원주보 4-5면, 채성욱 루도비코(시흥 승지초등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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