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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2: 대전교구 신리성지 순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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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1-17 ㅣ No.830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2) 대전교구 신리성지 순교미술관


한겨울 들판에 바람 맞으며 서 있으니 순교자 영성 따뜻이 나를 품어주네

 

 

- 성 다블뤼 기념관 전망대.

 

 

2022년 새해에 찾은 신리(新里) 성지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한겨울 허허로운 바람이 부는 들판 가운데 있는 성지는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종탑처럼 솟은 다블뤼 기념관 윗부분이 성지라는 것을 조용히 알려줄 따름이다. 주변의 편편한 들판과 조화를 이루는 넓은 정원과 곳곳의 작은 오각형 건물만 눈에 뜨인다. 성지의 작은 연못은 세례성사를 떠올리게 하고, 돌다리는 세상 너머에 있는 천상 세계로 인도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신리성지는 다블뤼 주교(Daveluy 안토니오, 1818~1866) 유적지로서, 정원과 다블뤼 기념관, 성 다블뤼·성 손자선 성당과 작은 경당들, 주교관과 휴게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 성지는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요람이며 카타콤바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 땅의 신앙 선조들은 박해 때에 남몰래 교우촌을 만들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신리(거더리)에도 일찍부터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었다. 1790년에 이미 손씨 집안을 중심으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신리는 박해를 겪던 조선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는데 서해를 통해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들의 기착지였기 때문이다. 1836년 초, 조선에 입국한 첫 프랑스 외방전교회 선교사 모방 신부(Maubant 베드로, 1803~1839)가 신리를 방문하여 교우촌이 공소로 설정되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대건안드레아, 1821~1846)와 함께 강경 나바위에 도착한 후 신리에 왔다. 이때 신리에 살던 손자선(토마스, 1844~1866)은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에게 자기 집을 주교관으로 내주었다. 그는 이곳에서 비밀리에 미사도 봉헌하면서 박해 받던 우리나라 교회에 관한 사료를 모아 책을 집필했다. 다블뤼 주교는 황석두(루카, 1811~1866)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였다.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 「조선 순교사 비망기」를 비롯하여 초기 한글 교리서를 저술하고 이를 목판으로 간행한 뜻 깊은 장소가 신리다.

 

- 경당과 연못, 성 다블뤼 기념관.

 

 

신리는 조선 천주교 초창기부터 마지막 박해 때까지 많은 신자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이곳 출신의 첫 번째 순교자는 1866년 병인박해로 공주에서 순교한 손자선이며 후에도 수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1866년 3월 30일에는 보령 수영의 갈매못에서 다블뤼 주교와 위앵 신부(Huin 루카, 1836~1866), 오매트르 신부(Aumaître 베드로, 1837~1866), 황석두 등 4명도 순교하였다.

 

이들은 신리에서 활동했거나 이곳과 깊이 연관이 있는 순교 성인들이다. 다블뤼 주교는 순교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21년간의 선교 기록을 남겼다. 이 자료들은 파리 외방전교회 달레 신부(Dallet, 1829~1878) 「한국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1984년에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신리성지는 다블뤼 주교와 손자선 순교 140주년 기념일(1866~2006)에 맞추어 2006년에 성 다블뤼·성 손자선 기념성당을 완공하고 축성식을 가졌다. 2014년에는 다섯 성인의 시성 30주년을 기리며 다블뤼 주교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지하 2층, 지상 4층으로 꾸며진 다블뤼 기념관에는 이곳 성인들에 관한 소개와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정원에 흩어져 있는 다섯 개의 작은 경당은 이곳과 연관된 다섯 성인을 기념하는 기도 공간이다. 2~3명이 들어갈 수 있는 경당의 한쪽 벽에는 성인의 초상화 부조가 있고 그 옆에는 성인의 말씀이 적혀있다. 다블뤼 성인의 경당에도 초상화와 함께 “예수님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라는 글이 적혀있다.

 

- 순교미술관의 대형 순교기록화들. 신리성지 제공.

 

 

2017년 3월 다블뤼 기념관 지하 2층에 ‘순교미술관’을 새롭게 개관하였다. 이 미술관은 순교자들을 주제로 한 작품만을 전시한 특별한 곳이다. 이종상 화백(요셉, 1938~ )이 3년에 걸쳐서 그린 13점의 대형 순교기록화와 5점의 성인화가 상설 전시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의 사제 서품식’, ‘강경 황산 포구 입국’, ‘신리 교우촌 사목 방문’, ‘다블뤼 주교관 모습’. ‘주교관 성당에서 미사 봉헌’과 다블뤼 주교 등 다섯 성인의 체포와 순교에 대한 기록화는 장지를 이어 붙여서 전통 채색화 기법으로 그렸다. 이 외에도 성 다블뤼 주교, 성 위앵 신부, 성 오매트르 신부, 성 황석두, 성 손자선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신리성지의 외부 정원은 언제든지 개방되어 있으나 순교미술관은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문을 닫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미리 성지 사무실로 연락해서 알아보고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순교미술관에서 나와 마당을 가로지르면 성 다블뤼·성 손자선 기념성당이 있다. 이곳에는 성인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어서 거룩하면서도 숙연한 느낌을 준다. 기념성당 내부의 뒤편에도 이종상 화백의 ‘천상에서의 성인과 순교자들’ 대형 순교자화가 걸려있다. 또한 성당 외벽에 순교자들의 부활을 주제로 한 대형 부조가 설치되어 있다.

 

성 다블뤼·성 손자선 기념성당 옆에는 초가집 한 채가 서 있다. 이 집은 손자선이 살던 곳이며 다블뤼 주교가 비밀성당과 주교관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1863년 화재가 발생하여 큰 피해를 입었으나 후에 공소로 사용하다가 옛 사진을 발견하여 이를 토대로 2004년에 초가집 주교관을 복원하였다. 대들보와 서까래, 주춧돌과 문지방 디딤돌, 상량문을 옛것 그대로 사용하였다. 주교관 옆에는 다블뤼 주교의 전신 동상이 있으며 주교관 앞에는 ‘승리의 성모자상’이 성지를 굽어보고 있다.

 

또한 성지 곳곳에 놓인 돌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부착되어 있어서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 나아가 순교자들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다.

 

신리성지의 건물은 다블리 기념관처럼 나지막하게 있어서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곳이 우리나라의 카타콤바라고 불리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감추고 숨어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절제된 분위기와 고요한 느낌을 주는 성지에서 사람들은 정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성지를 순례하면서 기도하고 걷다 보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느새 맑고 밝아진다, 텅 빈 듯한 성지가 우리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준다.

 

다블뤼 기념관의 꼭대기로 향하는 외부 경사로를 따라서 올라가면 전망대 역할을 하는 옥상에 이른다. 이곳에서 성지 주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나지막한 성지 전경과 얕은 건물, 내포의 넓은 논밭과 손에 잡힐 듯한 산, 나지막한 동네와 꼬불꼬불한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신리성지 근처에는 네 성인이 붙잡힌 ‘거더리’의 집(신리 99번지), 신리 무명순교자 묘, 내포 신리 교우촌, 합덕성당, 여사울성지, 솔뫼성지 등이 있다. 이곳을 순례하면서 새해를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맞는다.

 

주소 : 충남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신리 62-3)

미사 : 화요일~주일 오전 11시

순교미술관 : 화요일~주일 오전 9시~오후 5시

문의 : 041-363-1359 대전교구 신리성지

 

[가톨릭신문, 2022년 1월 16일,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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