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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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25: 조선시대 신자들 신심함양에 도움을 준 성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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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6-27 ㅣ No.2103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25) 조선시대 신자들 신심함양에 도움을 준 성물


성물 마련하기 위해선 전 재산도 아깝지 않아

 

 

- 배론 교우촌 출토 십자가. 부산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신자들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뿐 아니라 조정의 포악하고 가혹한 정치로 궁핍한 삶을 살았다. 그들을 돕고 싶었지만 그럴 능력이 없던 최양업은 줄곧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사제인 최양업이 신자들을 도울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부지런히 걸어 신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 그들에게 성사를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만날 수 없을 때도 신앙을 잃지 않도록 성패나 상본을 나눠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최양업의 서한에는 성물을 간절히 원했던 신자들의 깊은 신심이 드러난다.

 

 

신심함양에 도움을 준 성물

 

1850년 도앙골에서 보낸 일곱 번째 서한에서 최양업은 “신자들이 성물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이 불같다”고 설명한다. 또한 “상본이나 고상, 성패를 장만하기 위해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며, 성물을 장만하기 위해 전 재산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무엇이든 선뜻 다 내놓는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크고 작은 십자고상과 성패, 상본을 보내주길 요청한다. “상본은 예수님, 성모 마리아, 성 요셉, 세례자 성 요한, 사도들, 성 학자들, 그 밖의 성인 호칭기도에 나오는 성인 성녀들의 상본이면 됩니다. 그 물건들은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것이라야 합니다.”

 

7년 뒤인 1857년 9월, 불무골에 머물렀던 최양업은 “성물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교우들을 달랠 방도가 없습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성물을 보내달라고 다시 한번 서한을 보낸다. 묵주나 성모상뿐 아니라 성인들의 상본이 신자들에게 유용하게 쓰였음을 서한을 통해 알 수 있다. 가톨릭신자들은 신심을 높이기 위해 성물을 사용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성패와 작은 십자고상, 상본 등이다. 또 개인이나 가족이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 성인들의 성상을 모셨다. 조선의 신자들도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가정에서 기도하기 위해 최양업 신부에게 상본을 요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양업은 불무골에서 보낸 열세 번째 서한에서 신자들에게 필요한 성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 나라 교우들의 눈에 점잖게 보이며 될 수 있는 대로 얇은 종이에 채색 없이 잘 그린 조금 큰 상본을 보내주십시오. 성모님 상본을 많이 보내주시고 다른 성인들의 상본은 조금씩 보내주십시오. 요셉, 베드로, 바오로, 요한, 야고보, 프란치스코, 안나, 아가다, 막달레나, 바르바라, 루치아, 세실리아, 아나스타시아 등의 상본 약 100프랑어치를 보내주십시오. 또 작은 십자가와 성패를 보내주시되 묵주는 보내지 마십시오. 묵주는 조선 교우들도 아주 잘 만듭니다.”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루카) 소장은 “상본은 크기가 작아서 간직하기 편하고 자기 주보성인의 성화를 원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최양업 신부님이 가지고 다니면서 신자들에게 선물로 줬던 것 같다”며 “말이나 글로 신앙을 배웠던 신자들이 그림을 보고 기도할 수 있어 신심함양에 도움이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강화도 병인박해 순교자 묘에서 출토된 성모상. 부산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제공.

 

 

십자고상, 묵주, 성모 패 등 다양한 성물 쓰이다

 

1865년 베르뇌 주교가 알브랑 신부에게 보낸 물품 목록은 조선시대 신자들의 신심함양을 도왔던 성물에 대해 알 수 있다.

 

흑단목에 구리 십자가를 박아 넣은 십자고상, 묵주에 매다는 구리로 된 십자고상, 은제 십자고상, 칠고의 성모 패, 기적의 성모 패, 야자수 열매로 만든 묵주, 그리고 예수님과 성모님, 성인 상본 3000장을 보내달라고 베르뇌 주교는 요청했다.

 

1784년 한국교회가 창설된 직후 성모신심이 자발적으로 함양되면서 묵주가 신자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유통됐다.

 

프랑스 선교사 앵베르 주교가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리를 가르치면서 묵주를 만들어 보급했다고 전해지며, 최양업의 서한에 드러나듯 신자들이 직접 묵주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복자 윤운혜(루치아)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상본을 그리거나 나무로 묵주를 제작했고, 교회 서적들을 베껴서 교우들에게 팔거나 나눠 줬다. 복자 정순매(바르바라) 역시 오빠인 복자 정광수(바르나바)와 복자 윤운혜 부부를 도와 교회 서적과 성물을 신자들에게 보급하는 일을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포졸들이 들이닥쳐 자신의 몸을 숨기기도 급박한 상황에도 신자들은 교리 책과 성물을 먼저 숨겼다. 베르뇌 주교는 1864년 8월 22일 베롤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서 “포도청에서 저를 체포한다는 소문이 돌자 교우들은 책과 묵주와 상본들을 전부 땅속에 묻었으며 많은 이들이 집을 비우고 피신했다”고 전한다.

 

[가톨릭신문, 2022년 6월 26일, 민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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