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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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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7-26 ㅣ No.674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상)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면형무아’(麵形無我)의 삶

 

 

-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창설자 방유룡 신부.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제공.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의 영성은 그리스도와 일치를 뜻하는 ‘면형무아(麵形無我)’의 삶에서 비롯된다. 면형무아란 밀가루빵을 뜻하는 면형(麵形)이 미사 중에 성체로 변해 자신을 없애는 행위인 무아(無我)로써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성체성사의 기적을 행함을 뜻한다.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는 1953년 10월 30일 방유룡 신부에 의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 자생 남자 수도회다. 평소 한국적인 수도원 창설을 소명으로 삼았던 방 신부는 1946년 개성에서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녀회를 창설한 직후 남자 수도회를 창설하려 했으나, 6·25전쟁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1953년 당시 서울대교구 제기동본당 주임이었던 방 신부는 남자수도회 창설에 뜻을 모은 2명의 회원과 제기동성당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며 수도회를 시작했다. 이후 4년간 지원자들도 점차 증가해갔다.

 

수도회는 우리나라 자생 수도회인 탓에 외부의 자금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에 회원들은 1957년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부지를 마련하고 수도원 본원이 완성되기 전에는 1954년부터 3년간 명동성당 부속 건물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전쟁 직후 우리나라의 극심한 재정적 어려움도 감내해야했다.

 

방 신부는 수도원 본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부지를 마련하고 본원을 신축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이에 앞서 수도회 인준을 위한 준비도 진행했다. 우선 1955년 10월 고(故) 노기남 주교를 통해 수도회 창설 회칙에 관한 인준을 교황청에 청원했다. 교황청은 1956년 12월 6일 회칙과 설립을 인준했으며, 노 주교도 같은 달 25일 수도회칙과 창설을 인준했다. 수도회가 정식 인가됨에 따라 1957년 5월에 노 주교 주례로 본원 건물 축복식과 함께 창설자 방 신부의 종신 서원식이 거행됐다. 방 신부는 이날 수도성을 무아(無我)로, 세례명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로 정하고 평생을 남녀 수도 회원과 일반 신자들의 영적 지도에 전념했다.

 

방 신부는 평소 한국적인 수도생활의 맥은 당연히 한국교회의 창설자들이며 신앙의 선조들이었던 한국 순교자들의 얼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수도회 회원들은 방 신부의 뜻에 따라 한국 순교자들의 정신을 배우고 현양하고자 노력한다. 수도회는 ‘면형무아’를 그 핵심가치로 삼는다. 또한 이를 위해 ▲ 시작이고 끝이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도 지나치지도 않는 겸손함인 점성(點性) ▲ 자기비움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모든 것을 죽이는 순교인 침묵(沈默) ▲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의식하고,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대월(對越) 3가지를 강조한다. 수도회 회원들도 “점성, 침묵, 대월로 면형무아를 약속합니다”라고 서약한다.

 

회원들은 이 땅의 순교자들처럼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고 교회의 사명에 따라 성화를 이루고자 노력한다. 그 원동력이 되는 형제애를 나누고, 내적인 친교를 통해 순교 정신을 전파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7월 25일, 이재훈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중)


한국 순교자들의 복음 정신 알리려 노력

 

 

- 2003년 1월 10일 열린 제1회 ‘무아 장학회’ 장학 증서 전달식.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제공.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창설자 고(故) 방유룡 신부는 회원들에게 점성(點性), 침묵(沈默), 대월(對越) 3가지를 강조한 ‘면형무아’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갈 것을 강조했다. 또 이를 위해 ▲ 분심잡념을 물리치고 ▲ 사욕을 억제하고 ▲ 용모에 명랑과 평화와 미소를 띄우고, 언사에 불만과 감정을 발하지 말고, 태도에 단정하고, 예모답고, 자연스럽게 하고 ▲ 양심불을 밝히고 ▲ 자유를 천주께 바치고 그 성의(聖意)를 따르라는 구체적인 침묵의 길인 완덕오계(完德五誡)를 제시했다.

 

1957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본원을 완공한 수도회는 방 신부의 영성을 삶 안에서 실천하고 우리나라 순교자들의 복음 정신을 알리고자 노력해왔다. 이를 위해 그해 8월 당시 광주대교구장 고(故) 현 하롤드 대주교의 요청에 따라 제주도 분원을 설립하고 도민들을 위한 밀감농장 2200평을 운영했다. 9월에는 서울 새남터 순교 성지 주변에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비정규 학교인 ‘공민학교’를 세웠다.

 

1960년 12월 당시 서울대목구장 고(故) 노기남 대주교 주례로 첫 종신서원식을 거행한 수도회는 이후 회원 수가 계속 증가해갔다. 1961년 5월에는 인천교구 만수동에 분원(현 침묵의 요셉 수도원)을 설립한 뒤 농장을 운영했다. 1965년에는 첫 번째 성직 수사를 탄생시켰고, 이듬해 7월 수련소를 정식 개원했다. 1973년에는 수원교구에 이천 분원(현 치유의 성모 수도원)을 마련했다. 1984년 창립 후 첫 공식 총회를 개최한 수도회는 1987년 9월 12일 오랜 염원이던 새남터 성지 기념 성당 및 기념관 건립 봉헌식을 고(故)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거행했다.

 

1980년대 들어 수도회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도직을 모색해나갔다. 우선 1983년 11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따른 새 교회법에 따라 수도회의 회헌과 규칙 등을 개정했다.

 

새로운 사도직을 위해 의료 사목에도 영역을 넓혔다. 수도회는 1980년대 정신 질환자들의 차별받던 인권 현실에 주목, 의료 사업을 위한 신경정신과 전문 병원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1990년 한국 최초의 개방형 정신병원인 ‘성 안드레아 정신 병원’을 개원했다. 또한 신자들의 일상생활에 순교 정신이 깃들 수 있도록 피정 시설 설립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1976년에는 제주 서귀포에 ‘면형의 집’을, 1985년에는 인천에 ‘성 안드레아 피정의 집’을 설립했다. 또 1995년에는 서울 본원에 ‘복자사랑 피정의 집’을 열었다.

 

수도회가 이 땅에서 가진 소명과 사회적 역할을 자각하기 위해 해왔던 노력은 2003년 ‘무아 장학회’ 창설로 이어졌다. 수도회 창설 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시작한 ‘무아 장학회’는 회원들이 생활비 5%씩을 5년간 모아 만든 장학금이다. 수도회는 이를 통해 연령과 전공, 종교를 초월해 가난한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수도회 영성을 이어가는 신학도들을 발굴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8월 15일, 이재훈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하)


‘형제애 통한 전교’ 실천하며 세상과 소통

 

 

- 2021년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종신 서원식에서 종신 서원 대상 수도자들이 서원문을 낭독하고 있다.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 제공.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는 창설자 방유룡 신부의 뜻에 따라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형제애를 통한 전교를 실천하고자 노력해 왔던 활동 영역을 해외로 넓혀갔다.

 

수도회는 2006년 11월 21일 당시 마카오교구장 호세 라이훙셍 주교 요청에 따라 사제를 파견한 뒤, 2011년 2월 23일에는 마카오교구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수도원을 설립하고 라이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거행했다. 이는 성 김대건 신부가 수학했던 장소에 수도회 영성을 위한 새로운 신앙의 씨앗을 뿌린 것이라 그 의미를 더했다.

 

같은 해 10월 12일에는 필리핀에 외국인 수도자들을 위한 국제양성소인 성 로렌조 루이스 양성소, 2014년 5월 23일 성 페드로 칼룽소드 양성소 축복식을 열었다. 이듬해에는 동티모르 딜리교구에 수도회 회원들이 진출했으며, 2016년 5월 23일 레퀴도에(Lequidoe) 공소에 세바스티아운 고메스 수도원(현 동티모르 순교복자수도원)을 설립했다. 공소는 2018년 준본당으로, 지난해 8월 30일에는 본당으로 승격했다. 수도회는 현재 본당 사목과 함께 산하 고등학교 운영에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2016년 프랑스 르망교구에 성 시메온 프랑수아 베르뇌 장경일 수도원을 설립해 사제를 파견할 뿐 아니라, 일본 나가사키·페루 카라바이요(Carabayllo)교구에도 회원을 파견해 현지인 사목을 진행하고 있다.

 

수도회는 국내 순교자들을 조명하고 이를 현양할 수 있도록 학술적인 조명에도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를 위해 2012년 10월 15일 발터 카스퍼 추기경을 비롯한 국내외 저명한 학자들을 초빙해 제1회 순교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은 2014년과 2016년에도 각각 순교의 철학적 고찰, 순교의 교회사적 고찰을 주제로 이어갔다. 2018년에는 국내 청년들을 대상으로 전북 익산 나바위성지에서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 그리고 수도회의 영성을 나누는 ‘제1회 청년 순교자 축제’도 열었다. 이 밖에도 수도회는 순교에 관한 국내 학술 심포지엄들을 꾸준히 열고 있다.

 

형제애를 통한 전교라는 창설자 방 신부의 영성을 실천하고자 수도회는 해외 수도자에게도 문을 열었다. 수도회는 2009년 10월 17일 첫 외국인 수도자 입회를 시작으로 현재 베트남, 동티모르, 필리핀에서 수도자들이 입회해 함께 생활하고 있다. 2010년에는 평신도가 중심이 돼 수도회 영성을 실천하는 ‘제3회’를 창립, 2018년 첫 종신 서원자를 배출했다. 2011년부터는 북한이탈주민 정착을 위한 사도직 활동 ‘띠앗머리’를 시작, 남북한 청년들의 형제애를 쌓는데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수도회는 또한 사목적 도움이 필요한 공소에도 관심을 기울여 2011년 전주교구 심원공소에 성 손선지 베드로 수도원을 설립하고, 2017년부터는 전북 고창 개갑장터순교성지를 위탁, 관리해오고 있다.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땅의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형제애를 통한 전교를 위해 연대의 그물을 넓혀가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8월 22일,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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