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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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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10 ㅣ No.688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상)


어머니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 돌봐

 

 

- 해방직후 거리를 부랑하던 소년들과 함께하고 있는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설립자 이우철 신부.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제공.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총원장 장정숙 모데스타 수녀)는 고(故) 이우철 신부(시몬·1915~1984)가 설립한 방인 수녀회다. 이우철 신부는 수녀회를 창설하기 오래전부터 예수 성심께 봉헌된 불우한 소년들의 아버지였다.

 

이 신부는 1944년 서울 약현본당(현 중림동본당) 보좌신부 겸 가명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해방 전후로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고 많은 소년들이 거리를 부랑하고 있었다.

 

1946년 이 신부는 좁은 사제관에 5명의 소년들을 위해 사랑의 안식처를 마련하고 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 신부가 소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제들과 주변인들은 버림받은 어린 소년들을 그에게 의탁했고, 소년들의 수가 늘어났다.

 

이 신부는 이 모든 일을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사도직으로 받아들이면서 1947년 서울 잠실리(현 잠원동)에 불우한 소년들을 위한 보육원인 성심원을 설립했다.

 

하지만 6·25전쟁이 터지면서 영아들은 성심원에, 큰 아동들은 이 신부의 본가로 피난을 떠나야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 신부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매년 200명이 넘는 소년들을 국가의 도움 없이 양육하고 보호했다. 그러나 이 신부의 관심과 사랑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신부는 아이들을 위해 희생 봉사할 어머니들이 필요함을 절감했고, 또한 간절히 바랐다.

 

때마침 성심원 창립 당시부터 한마음으로 뜻을 같이했던 김의경(막달레나) 동정녀와 몇몇 자매들의 청원으로 1969년 ‘어머니회’라는 신심 단체가 발족했다. 김의경은 훗날 수녀회 초대 원장이 됐다. 수녀회의 모체인 ‘어머니회’는 자모적인 사랑과 헌신적인 희생으로 아이들을 보살폈다. 이 신부는 이들의 믿음과 삶을 보고 ‘어머니회’를 수녀회로 만들려고 했지만 교구가 해체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이 신부는 이 모든 상황을 하느님 섭리에 맡겼고, 어머니회는 마침내 1978년 프란치스코회 제3회 수녀회로 재발족했다. 곧이어 수녀회는 지금의 이름으로 1980년 정식으로 수원교구 인가를 받았다.

 

그러다 성심원은 아파트 개발 사업으로 잠원동을 떠나 수원교구 내 용인시 동천동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이 신부는 1984년 2월 성심원 건축 첫 삽을 뜨고 다음 날 지병이 악화돼 선종했다. 수녀회는 성심원의 모든 운영권을 이어받으며 모성적 사랑으로 아이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사도직을 펼쳐갔다.

 

이 신부가 지녔던 성모님께 대한 지극한 사랑은 그의 온 생애에 큰 힘이 됐다. 그는 늘 수녀회 회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불우한 소년들의 어머니가 되도록 하십시오. 어머니의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을 돌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미처 사람들이 못하는 부족함을 수도자가 해야 합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5월 8일, 박민규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중)


주님의 침묵 · 인내 · 사랑 본받기 위해

 

 

-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5월 8일 총원장 선출 전 성체 조배를 하기 위해 성체 현시를 하고 있다.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제공.

 

 

“교구 설립에 의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묵·인·애 가르침을 남겨 주신 우리 설립자 이우철(시몬) 신부님과 그분을 중심으로 모인 최초의 자매들의 정신에 따라… 예수님 말씀과 발자취를 따르고자 노력하는 자매들로 구성되는 수도가족이다.”(수도회 회헌 제1조 중에서)

 

고(故) 이우철 신부에 의해 해방 전후 불우한 아이들을 보살피는 데서 시작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모성적 사랑의 카리스마에 기초한 묵(默)·인(忍)·애(愛) 활동 원칙과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와 지향, 그리고 프란치스칸 정신으로 하느님께 영광과 구원을 드리는 수도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묵·인·애 활동 원칙은 “용기 있는 침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는 예수의 침묵, 인내, 사랑을 조용히 바라보라”는 뜻이다. 이는 내적 신비를 외적 행위로 이끄는 관상과 외적 행위를 내적 신비로 이끄는 활동의 상호 통합적 영성이다.

 

수도회는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보속하라고 전한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를 실현한다. 곧 세계 평화, 자신과 죄인들의 회개, 주님의 존엄을 욕되게 한 보속,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을 상하게 한 모든 것을 보상하기 위해 봉헌과 묵주 기도, 보속, 희생을 바친다.

 

티 없으신 성모성심을 공경하는 지향으로 매월 첫 토요일에 보속의 고해성사를 바치고 영성체를 하며 묵주기도를 바친다. 첫 토요일 신심 행위는 시작하는 달을 기준으로 다섯 번 연이어 진행한다.

 

또한 수도회는 ‘성 프란치스코 수도3회 형제자매들의 회칙과 생활’을 기초적인 법규로 택함으로써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따르며 프란치스칸 가족과 영적인 일치를 이루고자 한다. 곧 피조물, 형제자매들과의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며 프란치스칸 영성을 실현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고유 영성과 일반 영성으로 나뉘는 수도회의 영성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고유 영성은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에만 있는 묵·인·애 활동 원칙과 모성적 카리스마이며, 일반 영성은 교회 전체에 통용되는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인 기도와 보속, 희생정신, 그리고 프란치스칸 정신이다.

 

이러한 영성은 역동적으로 실현된다. 묵·인·애 활동 원칙과 파티마 성모님 메시지, 프란치스칸 영성이 관상과 활동의 상호 역동을 이루며, 여기에서 체험한 하느님 사랑을 모성적 사랑이라는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통해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5월 15일, 박민규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하)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금자리 제공

 

 

-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녀들이 성심원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 제공.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고(故) 이우철 신부가 해방 전후의 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해 설립한 성심원 운영에 매진했다.

수도회는 1984년 이우철 신부 선종 후에도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문적인 접근을 통해 성심원 아이들의 성장을 도모했다. 2018년에 성심원 건물을 신축했고, 지역사회와 긴밀히 교류하며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고 있다.

 

수도회는 성심원 이외에도 다양한 사도직을 통해 설립자의 정신을 세상에 전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1988년에는 용인 수지에 기도와 피정을 위한 성심교육관을 마련했다. 성심교육관은 수도회 모토인 묵·인·애 정신으로,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기도처가 되기 위해 시작했다. 막다른 처지에 놓인 신자들의 영성 성장을 돕기 위한 교육의 장소로 활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수도회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편안한 쉼의 장소가 되도록 프로그램을 운영, 관리하며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이우철 신부는 노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컸다. 1962년에 시작한 양로회에 이어 1992년 무료 양로원과 1995년 유료 양로 시설인 ‘여주 파티마 성모의 집’을 개원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는 있지만 더 윤택한 상황 안에서 신앙생활을 원하는 어르신들을 배려한 시설이다. 수녀들의 보살핌이 동반된 양질의 서비스를 통해 풍요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 안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갈망하며 목말라 하는 모든 신자들의 몸과 영혼의 쉼을 위해 1992년 여주에 피정의 집을 개원했다.

1999년 수지에서 시작한 그룹홈을 기점으로 2000년 서울에 2곳을 더 개원했고, 현재 서울 방배동에 여아들로 구성된 그룹홈 ‘성심 효주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의 아동들에게 가정과 같은 주거 여건을 제공하고 돌보며 이들의 올바른 인격 형성을 돕는다.

 

북한이탈주민과 관련된 다양한 과제들이 발생했던 2010년에는 부모와 함께 내려온 아동들의 문제가 심각했고, 이들을 돌볼만한 곳이 마땅히 없었다. 이우철 신부는 성심원을 운영하면서 훗날 남북이 통일되면 북한의 불우한 어린이를 돌보라는 당부를 남겼다. 수도회는 북한이탈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정착하는 동안 그들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서로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성모 소화의 집’과 ‘아녜스의 집’을 마련해 아이들을 돌보고 부모들의 정착도 함께 도와주고 있다.

 

5명의 전쟁고아들을 보살피며 복음의 씨앗을 전하기 시작한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며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2년 5월 22일,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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